등록 : 2006.02.09 20:57
수정 : 2006.02.09 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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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중 동국대 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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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국가인권위원회의 국가인권정책권고안에 대한 시시비비가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경총을 비롯한 경제5단체는 이례적으로 성명서까지 발표하면서 권고안에 대하여 강도 높은 비판을 가했다. 재계는 당 권고안이 사회적 합의를 결여한 채 일부의 주장만을 받아들여 성립된 불균형한 방안이며, 특히 인권위는 노사관계에 절대 관여해서는 안 된다는 태도를 분명히 하였다. 더 나아가 경총은 인권위가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결정도 무시하는 초헌법적 기관이라는 전제 아래 인권위의 존립 필요성에 대한 의문까지 던지고 있다. 한마디로 지금 인권을 떠들어봐야 경제에만 악영향을 미칠 뿐이며, 경제 성장이 이루어지면 자연히 일자리가 창출되어 양극화도 해소되고 인권상황도 증진된다는 논리이다.
그러나 재계의 성명은 인권위 권고안의 본질을 올바로 파악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근본적 가치를 단지 ‘먹고 사는’ 문제에만 국한하는 1970년대 인권의식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인권은 경제 성장에 자동으로 따라오는 종물이 아니다. ‘보편적’ 인권 개념은 시민사회가 투쟁을 통하여 쟁취한 양보할 수 없는 지고의 가치이다. 또한 인권은 근대 시민사회 형성과 발전의 초석이며 자유민주주의의 정수라고 할 수 있다. 국민의 기본권이 근대 헌법체계의 중심을 이루는 것도 그러한 사실의 방증이다. 우리 헌법도 국가권력의 행사를 인권과 조화되는 방향에서만 가능하도록 설정하고 있으며, 이러한 인권의 핵심 영역을 사회권으로까지 확대하고 있다. 따라서 사회권의 전형인 노사문제에 인권위가 관심을 갖는 건 인권위의 설립 목적 및 기능에 비추어 당연하다고 하겠다.
이번 인권위의 권고안은 2002년 유엔이 발표한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안의 국내적 이행계획의 일환으로 나온 것으로 국제사회의 보편적 합의를 충실히 따르고자 한 것이다. 인권은 이미 국내적인 문제만이 아닌 국제사회의 핵심적 가치로서 인정되고 있기 때문이다. 유엔헌장도 기구의 중요한 목적을 인권 증진에 두고 있으며, 이에 따라 인권 보호와 증진을 위한 국제법의 발전을 주도하고 국제인권법의 국내적 이행을 위한 다양한 시스템을 개발하였다. 인권은 국내법뿐만 아니라 국제법을 통하여 이중의 통제를 받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인권이 우리 사회에서는 종종 경제와 대립되는 대상으로 인식되곤 한다. 인권보다는 양극화 해소에 전력해야 한다는 경총의 인식도 양극화가 경제성장의 부정적 파생물이란 점을 간과하고 있다. 앞으로 경제성장을 통해 어떻게 양극화를 해소할지 구체적인 대책도 내놓지 못한 상황에서, 재계가 단순히 경제성장과 인권증진을 동일시하는 것은 무책임한 발언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국가권력이 법집행 과정에서 헌법에 명시된 인권보호에 소홀하지 않는지를 감시하는 것은 인권위의 당연한 기능이다. 이러한 인권위의 합법적 기능을 초헌법적이라고 한다면 국회, 감사원을 비롯한 모든 국가권력 감시기구의 활동 근거를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가? 인권위는 기본적으로 미래지향적인 조직이며, 이번에 나온 권고안의 성격도 우리 사회가 장래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유도하는 거시적인 청사진이라고 보인다. 인권위와 경제인들 사이에 시각의 착지점이 다를 수 있다. 하지만 그러한 시각 차이로 인권위의 존폐 문제를 거론한다면 국가가 나아가야 할 고양된 철학과 비전에 대한 논의 자체를 중지시키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인권은 경제의 적이 아니라 경제발전을 진정한 삶의 질과 연결하는 다리이다.
이용중/동국대 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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