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2.09 21:31
수정 : 2006.02.09 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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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자 가톨릭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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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대통령자문기구로 ‘지속가능발전위원회’라는 게 있다. 그런데 5년의 역사를 지닌 이 위원회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하는 곳인지 국민은 아직도 잘 모른다. 그동안 한 일이 없어서일까? 아니면 홍보가 안 되어서일까?
필자의 경험에 비추어 보면, 이 위원회에는 한국 사회의 지속가능성에 대해 염려하고 고민하는 사람들이 열정과 노력을 기울여 왔음에도, 그 근본적인 한계는 위원회의 역할이 물속의 기름처럼 국정의 흐름과 유리되어 왔다는 것에 있다. 이 위원회는, 집행력은 없을망정, 대통령 직속의 국정과제위원회로서 대통령이 ‘위원회 자문안의 실질적 이행을 직접 담보’한다는 강점을 지닐 수 있다. 그러나 그 강점을 살려내지 못하고 있다면, 그 근본 이유는 ‘지속가능한 발전’에 대한 대통령의 인식과 철학의 빈곤 때문이 아닐까?
현 정권이 출범한 이후 정책기조로 일관되어온 신자유주의적 시장주의와 신개발주의는 바로 그 한계와 위험성을 경고하고 지양하는 지속가능한 발전의 개념과 정면 대치되는 것이다. 지속가능한 발전이란 ‘미래 세대가 그들의 필요를 충족시킬 능력을 저해하지 않으면서 현 세대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것’으로 정의된다. 이 과제는 정권 차원을 넘어서 현 세대와 미래 세대가 ‘필요’로 하는 자연조건과 사회조건을 거국적, 우주적 차원에서 설정하고 이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실천해가는 것이다. 이는 우리 사회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는가의 운명을 우리 스스로가 결정짓는 것과 직결된다.
그런데 지금까지 정부는 지속가능한 발전을 환경보전 관련 분야로만 인식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었을 뿐 아니라, 이 분야의 정책들조차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기는커녕 오히려 혼란과 갈등을 유발해왔다. 개발과 보전의 가치충돌과 함께 국토개발계획과 환경보전계획이 대립하는 상황 속에서 지난 2년 동안 이 위원회에 주요 역할의 하나로 부여되었던 갈등조정의 역할은 애초부터 그 당위성과 실효성을 납득시키기 힘든 것이었다. 정권의 사활을 건 국책사업들이나 각종 정책현안들이 지속가능성의 개념과는 상반된 길로 치닫는 사태들은 방치하면서, 이로 인해 유발되는 갈등을 조정하는 역할을 맡겠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며 진정성이 없어 보였다.
지속가능한 사회의 모델로부터 우리 사회가 어디서 얼마만큼 멀리 떨어져 있는지는 그동안 정책담당자들, 전문가들, 사회활동가들의 줄기찬 문제 제기와 다양한 연구들에서 충분히 입증된 상태다. 이른바 선진국들이 벌써부터 고민해온 지속가능한 사회의 장기적 기획과 통합적 정책 패러다임이 한국이 전념해온 경제지상주의와 얼마나 괴리가 있는지는 거듭 말할 필요도 없다. 바로 이러한 배경 때문에 국정과제위원회로서 지속가능발위원회의 존재가치가 정당화되는 것이라면, 이에 대한 대통령의 기본 자세가 확실하게 재천명되어야만 한다. 신개발주의에 매몰된 현 정권이 내세울 수 있는 ‘지속가능한 발전’의 국정철학이 무엇인지, 그리고 지속가능발위원회에 어떤 역할을 기대하고 있는지, 국민이 알아듣기 쉽게 밝혀야만 한다.
2005년 6월 대통령이 선언한 ‘국가지속가능발전 비전’에는 ‘개발과 보전의 통합’을 고려하는 국토관리체계의 구축, 환경친화적인 경제구조의 정착 등이 주요과제로 설정되어 있다. 그러나 그 후속으로 수립되어야 할 ‘국가지속가능발전 이행계획’이 아직도 제시되지 않은 상태에서 국민으로서는 그 비전의 실체를 확인할 길이 없다.
이영자/가톨릭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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