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2.12 18:24
수정 : 2006.02.12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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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원 일본 릿쿄대학 교수, 국제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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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북-일 국교정상화 교섭이 3년 만에 재개됐다. 이번 정상화 교섭 재개에는 북한을 테이블로 끌어내기 위해 일본쪽이 다소 양보한 측면이 있다. “포괄적 병행 협의”라 불리는 새로운 회담 방식 자체가 그 예이다. 납치, 안전보장(핵과 미사일), 국교정상화 교섭등 세 의제를 병행적으로 토의한다는 것은 “납치문제 해결이 국교정상화 교섭의 전제조건”이라고 했던 방침을 사실상 수정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납치문제를 둘러싼 교착상태를 타개하기 위해서, 국교정상화(그 결과로 제공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는 경제협력)와 안전보장이라는 두 개의 ‘당근’을 구체적으로 제시함으로써 납치문제 해결을 향한 북한의 행동을 끌어내고자 하는 전략 전술적 변화다.
80억 달러에서 100억 달러로 거론되는 일본의 경제협력이 북한에게 있어 적어도 장기적으로 거대한 ‘당근’임은 물론이다. 그러나 단기적으로는 북한경제가 중국의 원조나 투자 및 무역을 통해서 조금씩 개선되는 현상에서는 일본의 경제협력 카드의 효과는 한정적이다. 오히려 안전보장 즉 핵문제를 둘러싼 6자회담의 진전이 일본의 카드로서 좀더 큰 비중을 갖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일본이 미국 부시 정권의 강경정책을 어느정도 완화시킬 수 있는가가 북한으로서는 큰 관심사이자 일본이 내세울 수 있는 ‘당근’이 된다.
이번 북-일 교섭 재개에 북한이 응한 것도 이같은 동기가 큰 것으로 보인다. 6자회담의 재개 시기가 불투명한 가운데, 당초 북일 교섭 재개에 대해서도 북한은 마지막까지 확실한 회답을 꺼렸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방중 직후에 북일 교섭 일정이 급작스럽게 확정된 배경에는 6자회담 재개를 둘러싸고 미-중, 북-중, 그리고 북-미 간에도 다양한 물밑 접촉이 있었던 것으로 보여진다. 특히 중국의 외교적 노력을 중심으로 6자회담 재개를 향한 커다란 틀이 갖추어져 가는 과정에서, 그 하나의 기둥으로서 “일본을 통한 대미 접근”이 북한의 관심사라 할 수 있다.
닷새에 걸쳐 진행된 이번 북-일 교섭의 구체적 내용은 별로 알려지지 않고 있다. 두 번째 의제로 다루어진 안전보장문제에 대해서는 “북한의 6자회담 복귀 촉구”등 일반론적인 내용만이 전해졌다. 주목되는 것은 북한의 송일호 북일교섭 담당대사 스스로가 기자회견에서 “일본과 미국은 동맹관계에 있다. 미국은 우리보다 일본의 말을 더 잘 듣지 않겠는가?”라는 직접적인 표현으로 “대미 설득”에 대한 기대를 표명한 점이다. 작년 9월 이후 표면화한 금융제재 해제를 위해 일본이 노력해 달라는 것을 이례적인 직설화법으로 표현했다.
납치문제에 관한 일본의 요구, 즉 생존자 귀국, 진상 규명, 납치실행범 신병인도등에 대해 북한은 공식적으로는 거부하면서도, 실제 교섭에서는 “조사 검토”등 많은 여운을 남긴 것으로 전해진다. 미국의 금융제재 해제와 6자회담 재개등의 진전이 있으면 그 반대급부로 납치문제에도 일정한 대응을 할 용의를 시사한 구도라 해석할 수 있다.
문제는 북-일 교섭 진전에 가장 큰 관심을 보여온 고이즈미 총리의 지도력이 급속히 저하되고 있는 점이다. 기본적으로는 임기 9월을 앞둔 레임덕 현상이지만, 일본 황실의 “여성천황” 문제를 서둘러 추진하다 좌절된 것이 “고이즈미 신통력”의 퇴색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중국과 한국에 이어서 일본이 6자회담의 진전에 어떠한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주목되는 대목이다.
이종원/일본 릿쿄대 교수·국제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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