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2.14 17:25
수정 : 2006.02.14 17:25
유레카
강원도 인제군 북면 용대리에 만해마을이 있다. 한용운 선생의 유지를 기리고 펴기 위해 만든 마을이다. 문인의 집, 만해문학박물관, 만해학교, 심우장, 그리고 서원보전(법당)으로 이루어졌다. 자연과의 아름다운 조화, 빼어난 현대성으로 2003년 한국건축가협회 대상을 받았다. 촌장(오현 스님)의 뜻과 건축설계사 김개천 교수의 상상력이 빚어낸 작품이다. 그런 만해마을 본관(문인의 집) 로비 정면엔 ‘건달바성’(乾達婆城)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잘 지어 상까지 받고서는, 허깨비의 집이라 했으니 참 야릇한 이름이다.
건달바는 인도 신화와 불교 설화에 나오는 신이다. 천상의 음악을 연주하며, 향기만 맡는다 하여 심향(尋香)이라고도 불린다. 불가에선 음악으로 제석천을 모시며, 불법을 지키는 팔부중의 하나로 꼽힌다. 건달바성은 그 건달바가 음악과 향기로 허공에 교묘하게 지은 성이다. 말하자면 신기루다. 세상의 이름과 모습은 생성소멸하는 이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신기루이니, 매이지 말고 밝게 보라는 뜻이다.
하늘에선 신격을 얻었지만, 세간에선 베짱이처럼 노래나 즐기고, 이리저리 향기나 탐하며 기웃거리는 자로서 ‘건달’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하지만 뜻만큼은 예의를 갖춰 ‘하늘 일에 통달했다’(乾達)고 하였다. 그런 세간의 건달들이 만해마을 건달바성에 모여든다. 식향 대신 문향을 탐하며, 음악 대신 이야기로써 세상을 아름답게 하려는 이들이니, 건달바보다 못할 게 없다. 세상사 탁류 속에서 길어올린 칠정(희로애락애오욕)을 술밥 삼고, 날선 감수성을 누룩 삼아 글을 빚는 게 이들의 일이다. 백담골짝은 만해 스님이 ‘님의 침묵’ 등을 탈고한 곳이니, 건달의 글을 숙성시키는 데 이만한 곳이 어디 있을까. 마을 촌장도 애초부터 이곳이 산통 중인 글쟁이가 몸 풀고 가는 곳이 되기를 바랐다. 요즘 12명의 건달바가 머물고 있으며, 대기하는 건달도 여럿 있다.
곽병찬 논설위원
chankb@hani.co.kr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