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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2.21 18:26 수정 : 2006.02.21 22:47

조태훈 건국대 경영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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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00억원은 상상이 안 되는 돈이다. 그 돈으로 문제가 해결될까?

‘삼성 문제’의 본질은 세 가지다. 첫째, 승계과정의 납득성이다. 둘째, 1등 기업으로서 존재의의와 행동양식이다. 셋째, 과거청산이다.

승계과정과 관련해서는 적법성은 물론이고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는 떳떳한 대물림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건국 이래 최고의 상속세는 꼬마(?) 그룹들이 냈다. 교보생명 1338억, 대한전선 1355억이었다. 삼성의 승계는 이건희 회장이 아들 재용씨에게 종자돈으로 증여한 61억원으로 출발하였다. 이에 대한 증여세로 16억원을 납부하였다. 나머지 45억원을 신출귀몰하게 굴려 후계자의 지위를 굳힌 셈이다. ‘국민감정’이 여기에 있다.

삼성은 맞상대가 없는 으뜸 기업으로 우뚝 서면 설수록 제어와 통제가 불가능한 절대권력화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정·관·법조·언론·학·문화계를 망라한 기존 지도층을 트롤어망으로 싹쓸이하고 오염시킨다는 비난과 우려가 높았다. 그 근저에는 모든 힘이 총수에게 집중되고 총수에 의해 자의적으로 행사되는 절대왕정적 지배구조가 도사리고 있다.

총수 일가가 어떻게 5%도 안 되는 지분으로 절대권력을 행사할 수 있나? 관계사 간에 얽히고설킨 순환출자 지분을 감안하더라도 납득이 안 된다. 여기에는 창사 이후 이어져 오는 전통의 비밀이 있다. 전·현직 임원 이름으로 존재하는 실로 엄청난 ‘차명’ 지분이다. 퇴직한 지 20년이 넘은 대표이사가 아직도 주식뿐만 아니라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다면? 이번 기회에 이런 부끄러운 과거의 유산을 털고 넘어가야 한다.

위의 본질적 문제에 8000억원이 정답인가? 3세들의 삼성 애버랜드 전환사채의 헐값 인수와 이들이 에버랜드를 통해 보유하고 있는 삼성생명 주식이 상장될 경우에(의당 계약자에게 돌아가는 대신) 얻을 수익을 추정해 보면 턱없이 모자란다. 게다가 전액이 사재에서 나왔어야 했다. 그런데 멀쩡히 잘 돌아가고 있는 장학재단을 갖다 붙였다. 그래서 이번에 내놓은 돈은 3500억원으로 봐야 한다는 반론이 제기된다. 그리고 차제에 개인 돈과 회사 돈을 확실히 구분하고, 자선은 개인 돈으로 해야 한다는 질책이 나온다. ‘빌 앤 멜린다 게이츠 장학재단’도 모르는가?

이번 발표로 삼성이 진정으로 추구한 목표가 궁금하다. 위기 탈출? 국면 전환? 존경받는 기업으로서의 조건 형성? 이 중 최소한 3세로의 승계를 기정사실로 인정해주고, 또한 그동안 비판, 비난, 사법적 쟁송의 대상이 되어온 모든 허물과 잘못을 양해 내지 용서해 줄 것을 기대했을 것이다. 그런데 발표내용도 속 빈 강정이다. 법무실 분리, ‘삼성을 지켜보는 모임’, 금융계열사 사외이사 확충, 어느 것 하나 그 나물에 그 밥이다. 삼성 전 계열사 사외이사를 ‘삼성을 지켜보는 모임’에서 제안한 인력 풀에서 임명하겠다는 아이디어 같은 것은 왜 나올 수 없나?

발표 형식도 문제다. 만약 이 회장이 오도되었다면 그 누구에 의했겠는가? 그리고 신출귀몰할 꾀가 누구의 머리에서 나왔겠는가? 실무 집행은 누가 하였겠는가? 일을 그르치게 한 주역들이 그르친 일의 해법을 발표하는 것은 역설적 경악이다. 그리고 총수가 직접 발표에 나서지 않았음은 큰 아쉬움이다.


삼성은 회장이 스스로 마음먹는 결단 없이는 근본적인 문제제기 자체가 불가능한 제국이다. 과거 청산도 진솔한 반성도 신선한 해결책도 없는 이유다. 떳떳한 승계를 위한 이 회장의 결단을 기대한다. 멍에를 벗겨주어 재용씨를 펄펄 날게 해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조태훈 건국대 경영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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