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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2.21 18:35 수정 : 2006.02.21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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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사돈(査頓)만큼 어렵고 불편한 사이가 있을까. 집안 체면이 깎이고 자식에게 누가 된다고 하여, 경쟁적으로 격식과 예의를 갖춘다. 허례허식도 동원한다. 그러다 보니 부담스럽고, 가급적 피하고 싶은 상대가 된다. 그래서 말글살이에선 사돈이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되는 걸 찾아보기 어렵다. ‘사돈의 팔촌’ 혹은 ‘사돈 남 말 한다’고 하여, 관계없음을 강조하거나 남의 허물만 탓하는 이를 빈정대는 데 굳이 ‘사돈’을 쓴다.

그러나 사돈의 유래는 참으로 아름다웠다. 고려 예종 때 여진을 정벌한 도원수 윤관과 부원수 오연총은 생사를 같이한 전우이자 막역한 벗이었다. 아들딸의 혼인으로 맺어진 관계이기도 했다. 어느 봄날 술이 잘 익은 것을 본 윤관은 오연총 생각에 하인에게 술동이를 지게 했다. 개울 건너 오연총의 집으로 가려는데, 웬걸 밤새 내린 비로 개울이 많이 불어 건널 수 없었다. 안타까움에 발을 구르고 있을 때, 건너편에선 오연총이 역시 술통을 옆에 두고 발을 구르고 있는 게 아닌가.

그렇다고 어찌 술을 지고 돌아갈 것인가. 잠시 후 두 사람은 개울을 사이에 두고 등걸나무(査)를 구해 걸터앉았다. 먼저 윤관이 깍듯한 예를 갖춰 술잔을 비운 뒤 개울 건너 오연총에게 ‘한 잔 받으시오’라며 잔 권하는 시늉을 했다. 오연총도 머리를 숙여(돈수·頓首) 잔 받는 예를 표시한 뒤 스스로 채운 술잔을 비웠다. 이런 수작은 독이 바닥날 때까지 계속됐다.

물론 지어낸 이야기일 터이다. 그러나 뒷사람은 두 사람의 돈독한 관계를 흠모하여 자식 사이의 혼인을 제안할 때는 ‘사돈(등걸나무에 앉아 머리를 조아린다) 해볼까”라고 하게 됐다고 한다.

대통령 사돈의 음주운전 은폐로 청와대와 경찰이 혼쭐났다. 사돈에 대한 격식이 지나쳤던 탓이다. 개울 건너 술 권하듯 정성만 가득했다면 어찌 그런 일이 있었을까.

곽병찬 논설위원 chank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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