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2.21 20:55
수정 : 2006.02.21 20:55
|
박종현 국회도서관 금융담당 연구관
|
경제전망대
자본시장통합법 제정 움직임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은행에 비해 미성숙한 자본시장이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법률적으로 뒷받침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동일한 금융기능에 대해서는 취급 금융기관을 따지지 않고 동일하게 규율하는 것이 정책의 일관성을 높일 뿐 아니라 규제의 차이를 이용한 투기를 막는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금융투자 업종의 칸막이를 해체함으로써 하나의 계좌로 예금과 주식투자 나아가 파생상품거래까지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도 매력적인 약속이다. 투자자보호 또한 시급한 과제 중 하나다. 증권사의 책임소재를 분명히 함으로써 각종 분쟁에 대비하고 이해상충의 여지를 사전에 최소화하는 것은 금융당국의 당연한 책무이기도 하다.
그러나 전체 금융시스템의 균형 있는 발전을 위해 자본시장의 규제환경을 정비한다는 것과 자본시장을 전략적인 고부가가치산업으로 육성하겠다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일이다. 자본시장통합법이 제정될 경우 우리나라도 겸업화와 대형화를 통해 멀지 않은 장래에 ‘골드만삭스’와 같은 세계적인 선진 투자은행의 출현을 기대할 수 있다는 장밋빛 기대는 바람직하지 않다. 새로운 법의 제정 의도가 미국의 월가나 런던의 시티에 필적할 만한 새로운 금융허브를 만들기 위한 것이라면 더욱 곤란하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외환위기 이후 심화되고 있는 양극화 현상 중 유독 외면을 받고 있는 부분을 볼 필요가 있다. 가계와 기업 그리고 노동과 자본 사이의 소득양극화 현상이 바로 그것이다. 한국은행의 보고에 따르면, 새천년 들어 지난 4년간의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5.6%였지만 가계의 실질소득 증가율은 0.3%에 지나지 않았다. 반면 지난 4년간 기업은 연평균 62.6%에 달하는 실질소득 증가율을 기록했다. 가계와 기업의 소득이 날로 벌어지는 결정적인 이유는 노사간의 힘관계가 급속하게 자본 쪽으로 쏠리면서 비정규직이 확산되는데 따라 노동소득분배율이 빠르게 하락한데 있다. 이는 외환위기 이후 임금이나 각종 급여가 상대적으로 줄고 대신 이윤·이자·배당·임대료가 늘어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기업들의 높은 실적과 수출 호조에도 불구하고 가계의 극심한 소비부진으로 몇 년째 체감불황에서 탈출하지 못한 것도 이 때문이다.
세계화와 지식정보사회라는 새로운 환경 속에서 ‘노동과 자본간의 소득양극화’는 불가피한 것으로 받아들이되, 소득원을 다양화함으로써 ‘가계와 기업간의 양극화’를 저지하려는 것이 재경부의 기본 입장으로 보인다. 가계가 그동안 소득의 대부분을 급여에 의존했다면, 앞으로는 가계의 자본시장 참여를 적극적으로 유도해 배당이나 매매차익 등 자본소득 비중을 늘림으로써 기업만 살찌고 개인은 궁핍해지는 현상을 개선하겠다는 것이다. 몇년전부터 자본시장 육성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금융허브의 청사진을 제시해 왔던 것이나 ‘자본시장통합법안’을 마련하고 있는 것 또한 이러한 맥락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입장은 최근 부시 행정부에 의해 진행되고 있는, ‘소유자 사회’ (ownership society)를 향한 실험과 친화성이 높다. 현재 미국에서는 국가의 역할을 줄이는 대신 개인의 자유와 소유를 늘린다는 명분 위에, 사회보장제도와 의료보험을 민영화하고, 연금재산을 주식화하며, 재산소득 과세의 궁극적 철폐를 겨냥한 감세정책을 펼쳐지고 있다. 그러나 국민경제의 재생산이 자본과 금융시장에 철저히 의존하는 상황에서는 개인의 무한책임만이 강조되는 가운데 사회와 경제의 양극화가 더욱 심화될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시대적 변화를 반영하여 자본시장의 규제환경을 새롭게 정비하려는 시도가 금융허브나 자본시장 육성이라는 슬로건이나 ‘소유자 사회’와 같은 위험한 이데올로기와 맞물려 경제의 보수화를 극단화하는 동력으로 변질되는 것은 반드시 막아야 한다. 금융의 발전이 그 자체의 절대적인 목표가 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며, 금융과 실물이 건강한 동반자관계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금융허브의 몽상보다는 금융의 공공성을 어떻게 하면 높일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이 절실한 시점이다. 그것이 양극화 해소라는 정책적 목표와 코드가 맞는 방향이기도 하다. 양극화 해소는 물론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도 자본보다는 노동에 유리한 방향으로 소득재분배의 유인체계를 설계하는 것 또한 중요한 시대적 과제다. 자본보다는 사람이 존중받는 사회가 경제적 효율성도 높기 때문이다.
박종현/국회도서관 금융담당 연구관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