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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용립 경성대 교수·국제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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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지난 1월31일 국정연설에서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자유의 확산’을 원론적으로만 강조했을 뿐 북한을 직접 비난하지는 않았다. 예년과 달리 북한에 대한 직접적 비난이 빠진 사실을 두고 한국 언론들은 교착상태에 빠진 6자 회담을 의식해서 북한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의도로 분석했다. 그러나 직접적인 비난이 없다고 해서 이것을 바로 6자 회담과 연관시킬 수는 없다. 당장 국정연설의 어디에도 적대국의 체제 변환을 겨냥한 공격적 ‘변환 외교’를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추진하겠다는 암시조차 없다. 이번 국정연설의 뼈대는 미국이 세계적 리더십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물론 정치적 비판에 직면한 이라크 점령을 강변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국정연설의 행간을 읽어보면 핵심은 따로 있다. 부시 대통령이 말하는 리더십이 과거의 패권적인 것이 아닌 군사적인 것이라는 사실이다. 엄밀히 말해서 패권이란 주변국이 중심국의 이념과 이익을 자발적으로 공유할 때 성립하는 국제질서다. 곧, 합의된 질서다. 그래서 패권은 단순한 군사·안보 질서와 다르다. 달러와 핵우산을 바탕으로 해서 냉전시대의 미국이 극동 아시아와 서유럽에 구축한 반공체제는 단순한 안보질서가 아니라 전형적인 패권이었다. 지금 미국의 고민은 바로 이 패권의 붕괴다. 소련이 무너지고 유럽연합이 독자적 정치단위로 대두한 탓에 극동과 서유럽의 미국 패권을 유지할 환경이 사라진 현실, 바로 이것이 테러와 함께 탈냉전 시대의 미국이 직면한 현실이다. 무엇보다 서유럽이 반대한 이라크 침공까지 강행하는 바람에 50년이나 다져 온 서유럽과의 합의가 흔들리고 있으며, 극동의 패권질서 또한 근래의 한-미 관계가 보여주듯 변하고 있다. 따라서 지금 미국의 당면 과제는 흔히 말하는 것처럼 미래의 중국을 봉쇄하는 것이 아니다. 과거의 패권을 대체할 새로운 질서부터 수립하는 일이다. 그리고 이 새 질서란 미국이 동맹국과 이익과 가치관을 공유해야 하는 패권적 질서보다는 그런 부담에서 벗어난 ‘군사적 질서’가 될 수밖에 없다. 비판받고 있는 미국 일방주의의 기원도 이것이다. 따라서 “미국을 위험과 쇠망으로 이끌고 갈 고립주의”에 굴복해서는 안 된다는 부시 대통령의 경고는 미국 군사력의 전진 배치와 공격적 군사외교의 정당성을 우회적으로 주장한 것과 다름이 없다. 그렇다면 베이징 공동성명 이후 반년이 지나도록 아무런 진전이 없는 6자 회담에서 시간은 결코 북한 편이 아니다. 특히 장기적으로도 미국의 대북 정책은 큰 변화가 없을 것이다. 차기 미국 대선의 유망 후보로 떠오를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상원의원과 공화당의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도 구체적 방법론에서 차이가 있을 뿐 미국의 가치를 세계로 확산시키려는 미국의 전통에 충실하다는 점에서 마찬가지다. 이런 정황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의 방북이 두 달 연기되었다. 그래서 지방선거를 의식한 ‘내수용’이라는 비판은 일단 면했다. 그러나 ‘6월 방북’도 남북만의 이벤트로 기획해서는 안 된다. 김 전 대통령의 회심작인 ‘6·15 공동선언’을 2001년의 한-미 정상회담에서 묵살하면서 김 전 대통령과 이미 악연을 맺은 인물이 부시 대통령이다. 따라서 이번 방북은 그 형식과 내용을 북핵 문제 해결이라는 현안에 맞추어 치밀하게 조율해야 한다. ‘합의된 패권’에서 ‘일방적 안보’로 이동하고 있는 미국 외교의 기준점을 읽고 대처해야 한다는 말이다. 앞으로 한반도 정세에서 가장 중요한 외교적 변수는 바로 이것이다.| 한겨레 필진네트워크 나의 글이 세상을 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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