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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2.22 19:40 수정 : 2006.02.22 19:40

셀리그 해리슨. 미국 국제정책센터 선임연구원

세계의창

세계가 지역적 패권국가의 지배를 받는 ‘영향권’으로 분할돼 있다는 전통적인 지정학적 개념은 민족주의가 성장하고, 세계경제가 통합되면서 점점 더 낡은 것이 되고 있다.

미국이 여전히 텃밭으로 여기고 있는 라틴아메리카에선 포퓰리스트 정치집단과 민족주의적 체제가 미국의 영향력을 밀어낼 방안을 찾고 있다. 동북아에서도 마찬가지다. 일본의 지배에 대한 오랜 두려움과 중국의 부상에 대한 새로운 우려는 한국의 균형자 역할이라는 좀더 복잡한 ‘삼각 파워게임’의 등장으로 상쇄되고 있다. 통일 한국은 노무현 대통령이 제시한 지역의 균형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은 우고 차베스가 베네수엘라에서 권력을 잡음으로써 노정된 도전을 인식하는 데 둔감했다. 1년 전 복음주의 전도사 패트 로버트슨은 참을성 없이 차베스 대통령을 미 중앙정보국(CIA)의 조종을 받는 암살자에 의해 제거돼야 할 암적 존재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조지 부시 행정부의 경각심은 차베스 대통령이 석유로 벌어들인 돈을 쿠바와 아르헨티나뿐만 아니라, 볼리비아와 페루의 반미 정치인들을 재정적으로 지원하는 데까지 이르러서야 확산됐다.

포퓰리즘과 급진적인 경제정책은 라틴아메리카에서 수십년 동안 펼쳐진 미국의 약탈적 정책에 대한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미국의 정책은 유럽 식민지 정착민들의 후손인 백인 지배엘리트와 토착 인디언 민중과의 사회적 긴장을 악화시켰다. 최근 차베스 대통령의 적극적인 지지와 지원을 업고 볼리비아 대통령에 당선한 에보 모랄레스는 라틴아메리카 최초의 토착 인디언 출신이다.

모랄레스는 대통령에 취임하기 직전 베네수엘라를 방문했다. 그 때 차베스 대통령은 “악의 축은 미국과 그 동맹국들이다. 그들은 끊임없이 세계를 위협하고 침략하고 죽이려 한다. 우리는 선의 축을 형성하고 있다”고 선언했다. 그의 옆에는 모랄레스만 선 게 아니었다. 오는 4월9일 페루 대통령 선거에 나설 후보 가운데 선두주자인 포퓰리스트 지도자 올란타 우말라도 거기에 있었다. 그 역시 차베스 대통령의 재정 지원을 받고 있다.

모랄레스는 선거 과정에서 볼리비아 석유와 가스산업을 국유화하겠다고 공약했다. 볼리비아의 가스 매장량은 라틴아메리카에서 베네수엘라 다음으로 많다. 차베스 대통령은 볼리비아에 대한 대규모 원조와 볼리비아의 가스산업을 재편하는 데 기술적인 도움을 제공하기로 모랄레스와 합의했다.

차베스 대통령이 최근 아르헨티나에 제공한 ‘경제적 선물’은 특히 워싱턴의 우려를 불렀다. 베네수엘라는 15억달러 규모의 아르헨티나 채권을 사들였다. 이로서 베네수엘라는 아르헨티나 최대의 채권국이 됐다. 네스토르 키르츠너 아르헨티나 대통령은 까다로운 조건을 붙이는 국제통화기금(IMF)에 대한 의존을 줄일 요량으로 차베스 대통령과 경제적 유대를 강화하고 있다.

차베스 대통령은 국제통화기금에 맞서기 위해 조건을 연계하지 않는 대출을 제공할 새로운 ‘남미은행’ 구상을 선전하고 있다. 그는 또 아랍 위성방송 네트워크 <알자지라>를 본뜬 라틴아메리카 텔레비전 네트워크 <텔레수르> 프로젝트를 밀어붙이고 있다.


중국과 라틴아메리카의 정치·경제적 유대 강화는 이 지역에서 영향력을 유지하려는 미국의 능력에 대한 세계화의 충격을 설명한다. 피터 하킴 아메리카대화 국장이 <포린 어페어스> 최근호에 쓴 것처럼 “라틴아메리카의 수많은 사람들이 중국을 이 지역에서 미국의 패권을 대체할 정치·경제적 대안으로 여기고 있다.” 후진타오 국가주석은 지난 2년 동안 라틴아메리카를 두 차례 방문했다.

동북아에서 미국 국방부와 일본 방위청은 엄청난 방위비 지출을 정당화하기 위해 중국의 공격적인 패권 추구 경향을 지속적으로 경고해 왔다. 그렇지 않았다면 미 국방부가 북한의 군사적 위협이 퇴조하는 상황에서 ‘과장된 군사력’을 유지하기 위해 어떻게 1년에 400억달러라는 거액을 쏟아부을 수 있었겠는가?

분명히, 중국은 이 지역 최고의 경제력과 군사력을 갖게 될 것이다. 그러나 베이징은 야심만만한 이웃인 일본과 한국의 군사적, 경제적 힘에 의해 자신의 야망이 제한돼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 양보장 중국현대국제관계연구소 일본·한국 연구부장은 지난 15일 브루킹스연구소에서 열린 세미나에서 “중국과 일본은 경제적으로 점점 더 상호의존적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통적으로 중국의 지배를 받아온 몽골조차도 세계화의 결과로 중국과 거래에서 의미있는 지렛대를 갖고 있다. 몽골은 일본뿐만 아니라 한국, 심지어 미국에서도 투자와 원조를 받고 있다.

미 국방부와 그 지지자들은 한반도가 통일된 뒤에도 미군이 계속 주둔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중국의 지배’라는 유령을 들먹인다. 그러나 그들의 주장은 다음과 같은 의심스러운 가정에 근거하고 있다. 첫째, 미국의 불개입은 권력의 진공상태를 초래할 것이다. 둘째, 중국과 일본, 러시아는 1894년부터 1905년 사이에 그랬던 것처럼 지배권을 놓고 경쟁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미국의 보호를 받지 않는 통일 한국은 필연적으로 중국과 군사동맹을 추구할 것이다.

이런 가정들은 통일 한국이 독립적으로 비핵 완충지대 역할을 할 것이라는 가능성을 배제하고 있다. 한국의 지금은 그때와 완연히 다르다. 19세기 말의 한국은 정치적으로 민감하지 않았다. 교육 기반이 취약한 방대한 봉건적 농촌사회가 남아 있었고, 저변에 광범위하게 깔린 민족주의적 의식은 개발되지 않았다.

민족주의는 지금 남북한을 움직이는 추진력이다. 이는 어떤 형태로든 정치적으로 침묵하고 경제적으로 저개발된 100년 전의 한국보다 외세의 조종에 취약하지 않은 통일된 체제를 만들어낼 것이다. 요컨대, 분단이 종식되면 외부 세력이 와서 채울 권력의 진공상태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한국은 자신의 당연한 권리를 행사하며 권력으로 등장할 것이다.

셀리그 해리슨/미국 국제정책센터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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