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2.28 18:23
수정 : 2006.02.28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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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영 한신대 교수ㆍ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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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전망대
진보개혁 세력의 이념과 능력에 대해 비판하는 것이 지식인 사회의 유행이 되고 있는 것 같다. 민족주의 또는 계급주의가 ‘본래’ 배타적이고 폭력적이라는 주장도 간단히 무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자유주의 전통이 허약한 한국에서 이러한 비판이 책임감 있는 대안으로 나타날 수 있을지는 좀더 지켜봐야겠다. 더 주목할 만한 것은, 진보개혁 세력 안에서 전투적 계급운동과 통일지상주의를 비판하면서 사회민주주의 대안에 관심을 기울이는 흐름이다.
그런데 유럽 선진국들에서 만들어진 사민주의라는 옷이 우리 몸에 잘 들어맞을까. 필자는 사민주의 정책모델과 동아시아-한반도의 현실이 아직은 비정합적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남북 통합과 내부적 재구성, 그리고 새로운 지역질서의 형성이라는 복잡한 연립방정식을 풀어야 한다. 한국은 아직 발전도상 수준이고 북한은 최빈국에 가깝다. 경제수준도 문제지만, 남북 모두 정교한 복지제도에 필요한 거대한 실용적 전문가 그룹, 관대하고 문화적인 교양을 갖춘 유산계급을 두지 못했다. 굳이 따지면 북한보다는 남한이 사정이 나을 것이다. 그러나 사회복지 제도가 이주민에 대한 장벽이 되고 있는 선진국을 볼 때, 남한만의 사민주의는 편협하고 과격한 보수층과 결합하여 거대한 반통일ㆍ반개방 세력을 만들 가능성이 많다.
역시 우리의 전통과 현실을 좀더 세밀히 살펴야 할 것이다. 그런데, 1980년대에 분화되었던 ‘자주파’와 ‘평등파’가 은연중 염두에 두었던 경제모델은 실행 가능성이 없다. 그렇다면, 분열 이전의, 덜 급진적이면서 당대 현실에 밀착한 논의에 주목하는 것이 좋겠다. 1960~70년대에 형성된 ‘민족경제론’의 핵심과제는, 민족 단위의 경제적 공간을 형성하는 것, 그리고 그 속에서 직접적 생산자의 삶과 권리를 확보하는 것이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들이 분열된 과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곧 “민족적인 것이 민중적이고 민중적인 것이 민족적”인 것이다.
물론 민족경제론은 일국 단위의 축소균형을 지향했다는 문제를 안고 있었다. 이는 시대적 한계이기도 하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분계선이 확연해지면서, 각 진영 내에서는 국가 단위로 정책적 자율성의 공간을 일정하게 허용하는 경제체제가 만들어졌다. 당시로서는 남북을 통합하여 형성되는 민족경제가 일국 단위에서 형성될 수 없는 것만은 아니었다. 남북 두루 그런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폭력에 기초한 발전지상 국가를 추구했다. 민족경제론도 그 사이에서 민중이 주도하는 민족경제의 가능성을 모색했다.
그러나 70년대, 80년대에 중요한 변화가 진행되었다. 일국 단위에서 국가가 환율을 고정하고 자본이동을 통제하며 독자적인 거시정책을 펴는 것이 어려워졌다. 기술 변화에 따라 국가 단위의 점진적 추격 대신 세계적 차원의 이동과 비약이 중요해졌다. 국가사회주의는 더 작동하기 어려운 모델이 되었으며, 동아시아 지역은 새로운 국제적 생산 네트워크의 중심지로 떠올랐다. 생산체계가 복잡화되면서 생산자의 내부 구성도 다양해지고 소비자와 환경문제가 훨씬 더 중요해졌다.
이제 이렇게 바뀐 환경 속에서, 민족 단위의 경제적 공간을 형성해가야 한다. 그리고 경계선을 유동화하고 개방-혁신-연대의 원리로 경제를 재구성해야 한다. 이는 분리된 것이 아니라 서로 상대를 필요로 하는 통일된 과제다. 우리는 이를 다시 ‘개방형 민족경제’, ‘동아시아-한반도경제’로 부르고 싶다.
이일영/한신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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