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3.01 20:48
수정 : 2006.03.01 20:48
유레카
하이닉스반도체는 2002년 4월 미국 마이크론테크놀로지에 헐값에 넘어갈 뻔했다. 이덕훈 당시 한빛은행장 등 협상단이 사인하고 온 매각 조건은 굴욕적이라고 할 만했다. 하이닉스 채권단은 건질 게 거의 없었다. 되레 15억달러의 신규자금을 무보증으로 지원하게 돼 있었다. 그래도 전윤철 당시 부총리를 비롯한 관료들은 “하이닉스는 독자 생존이 어려워 매각해야 한다”며 채권단에게 수용할 것을 종용했다. 채권단은 협상안을 승인했지만, 하이닉스 이사회가 부결시켜 매각은 무산됐다. 하이닉스는 보란 듯이 살아났다. 2003년 정부는 외환은행도 독자생존이 불가능해 매각해야 한다고 밀어붙여 미국계 사모펀드인 론스타에 넘어갔다.
‘수석침류’(漱石枕流)란 중국 진나라 때 손초란 사람의 말에서 유래했다. 그가 산속으로 은거하려는 까닭을 친구인 왕제가 묻자, “돌로 베개 삼고 흐르는 물에 양치질하려 한다”를 잘못 말해, “돌로 양치질하고 흐르는 물로 베개 삼겠다(수석침류)”고 했다. 왕제가 무슨 뜻이냐고 되물었다. 그는 “물로 베개를 삼겠다는 건 되지 못한 소리를 들었을 때 귀를 씻는다는 뜻이요, 돌로 양치질함은 이를 단단하게 한다는 뜻”이라고 그럴듯하게 답했다. 견강부회나 아전인수와 비슷한 의미로 쓰이는 고사성어이다.
정부는 요즘 한-미 자유무역협정 체결 필요성을 홍보하는 데 여념이 없다. 효과는 부풀리고, 피해가 우려되는 부문은 시장 개방으로 경쟁력이 높아질 것이라고 포장한다. 대규모 공적자금 투입과 영업환경 변화에 따른 국내 은행권의 수익성 개선도 시장 개방 덕이라며 갖다 붙인다. 관료들은 정책을 합리화하는 논리를 꾸미는 데 능숙하다. 하이닉스 건은 관료 뜻대로 되지 않아서 국익에 보탬이 됐고, 외환은행 건은 관료 뜻이 관철된 결과 엄청난 국부 유출을 초래하게 됐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은 훗날 어떤 평가를 받을까.
김병수 논설위원
byungs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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