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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3.01 21:45 수정 : 2006.03.01 21:45

서민 단국대 교수·기생충학

야!한국사회

“나도 디지털 카메라(디카)가 있었으면 좋겠다.”

내가 노상 하는 말이다. 주머니에 돈이 없으면 먹고 싶은 게 많듯이, 디카가 없으니 왜 그리도 찍고 싶은 게 많은지 모르겠다. 이렇듯 디카를 갖는 게 소원인 나, 남들은 술만 안 먹으면 디카 하나쯤은 살 수 있다고 나를 부추기지만, 당장 눈앞의 술을 포기하는 건 내겐 불가능한 일이다. 정 그렇다면 휴대폰에 달린 카메라(폰카)라도 이용하면 좋으련만, 내 폰카는 그다지 성능이 좋지 않다. 찍으면 안개가 낀 것처럼 뿌옇게 나오는지라, 입에 고춧가루가 묻었는지 식별하는 것도 어려울 지경이다. 다른 사람들 폰카는 제법 선명하게 나오던데, 이게 다 화소 수가 모자란 탓이라고 푸념을 하곤 했다.

어제, 높은 분들을 모시고 회식을 하는 도중 하도 심심해서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그러는 와중에 휴대폰 카메라의 렌즈가 심히 더러워진 걸 발견했다. 휴지를 꺼내서 조금 닦아봤다. 그리고 촬영 버튼을 눌렀더니, 이럴 수가. 무척이나 선명하게 보인다. 내친김에 책상 위에 놓인 만두를 찍었다(그 와중에 스마일 소리가 나서 잠시 시선이 집중되었다). 그 사진을 친구에게 보낸 뒤 어떠냐고 물었더니 “참 맛있게 생긴 만두네”라는 답장이 날아온다. 더 열심히 닦아야지 싶어서 휴지에 물을 묻힌 뒤 볼펜심으로 눌러가면서 렌즈를 빡빡 닦았다. 그러고는 내 얼굴을 촬영했더니 피부에 난 미세한 돌기까지 다 보인다. 이런 것도 모른 채 화소만 원망했던 지난 시간이 부끄럽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방북이 결국 지방선거 뒤로 연기되었다. 디제이가 북한에 가는 게 지방선거와 무슨 상관이 있는지 솔직히 난 모르겠다. 이미 정치권에서 은퇴한 사람이 김정일을 만난다고 해서 유권자들이 우르르 열린우리당을 찍기라도 하는 걸까?(사실 디제이는 민주당에 더 가깝지 않을까?) 디제이의 힘이 미치는 곳이라 해도 호남밖에 없을 텐데, 디제이가 뭘 한들 영남패권주의를 조장하고 호남에는 별 관심도 보이지 않는 한나라당을 호남인들이 찍을 것 같지도 않다. 게다가 2000년 총선에서 당시 민주당이 남북 정상회담을 총선에 이용하려다 엄청난 역풍을 맞은 경험도 있는데, 왜 한나라당은 그렇게 결사반대를 하는 걸까? 그들의 눈에는 모든 사람의 행동이 지방선거에 영향을 끼치려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나 보다. 아니, 선거가 없는 해가 과연 있기는 할까? 내년에는 대선, 그 다음해에는 국회의원 총선거, 그밖에 숱한 재보선이 있고 나면 또다시 지방선거의 해가 돌아온다. 자, 그렇다면 한나라당은 언제쯤 디제이를 흔쾌히 북한에 보내줄 수 있을까? 그간의 행적으로 추측하건대 한나라당은 사실 남북화해가 싫은데, 그렇게 말하면 안될 것 같으니까 선거를 빙자해 딴죽을 거는 게 아닐까?

그것도 모자라 전여옥 의원은 어느 강연회에서 디제이를 치매에 걸린 노인에 비유했다고 한다. 그 스스로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하지만, 디제이의 방북에 심기가 영 불편한 것은 틀림없어 보인다. 디제이에게 정치적 의도가 전혀 없는 건 아니겠지만, 이번 방북을 6·15 선언을 이행하려는 노정치인의 노력쯤으로 봐주면 안되겠나? 카메라의 렌즈를 닦으면 사물이 선명하게 찍히는 것처럼, ‘지방선거’로 얼룩진 수정체를 깨끗이 닦고 보면 사물이 제대로 보일지도 모른다. 초당적 협력이 필요한 남북관계에서는 깨끗한 렌즈가 절실히 필요하다.

서민/단국대 의대 교수·기생충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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