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3.01 21:46
수정 : 2006.03.02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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딘 베이커 미국 경제정책센터 공동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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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창/딘 베이커
냉전 초기에 미국 정부는 다른 나라들의 미래 지도자로 꼽히는 이들을 미국으로 데려와 일련의 강의와 세미나에 참석시키는 한 묶음의 프로그램을 고안했다. 체류하는 동안, 이들 미래의 언론인, 재계 인사, 정치인은 미국의 이름난 학자, 언론인, 정치인들을 만난다. 촉망받는 이들 젊은 외국인이 각자 나라에서 책임 있는 자리에 오를 경우 미국의 정책에 대한 지지를 끌어낸다는 기대 속에 이들에게 극진한 관심을 쏟는다는 게 이 프로그램의 취지였다. 이 정책의 효과는 기대 이상의 효과를 낸 것처럼 보인다. 미국과 ‘자유 무역’ 협정을 맺으려 하는 나라들이 그렇게 많은 현실을 그럴 듯하게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이외에는 없다. 이들 협정에서 미국이 얻는 편익은 찾기가 쉽지만, 상대국들이 받는 이득은 좀처럼 발견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들 협정은 미국의 무역 상대국들에게 높은 약값을 강요하고 경제정책을 펼칠 운신의 폭을 좁히는 메커니즘이기 쉽다. 점령당한 나라가 그런 조건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것은 이해할 수 있는 일이지만, 독립된 나라가 미국이 지난 20년 동안 밀어 부쳐온 그런 무역 협정에 합의하는 이유를 찾기란 어렵기만 하다. 미국의 양자 ‘자유 무역’ 협정들은 그 세부 내용에서 나라마다 차이가 있지만, 공통되는 상당한 표준적 조건들이 있다. 이 목록의 맨 위에 산업정책, 곧 보조금, 저리 대부, 한시적 보호 등을 통해 주요 산업들을 육성하는 산업정책을 금지하는 규정이 있다. 산업정책은 성공을 거둔 거의 모든 나라가 발전시켜온 것이다. 개발도상국들이 이런 조건들에 동의한다면, 성장과 개발로 향하는 가장 유리한 길에서 스스로 벗어나는 것이다.
미국이 맺는 양자 협정의 두 번째 표준적 부분은 한층 엄격한 특허 보호를 통해 다른 나라에 높은 약값을 강요하는 규정이다. 미국 정부는 의약업체들에 무제한의 특허 독점을 부여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다른 나라들은 의약산업의 독점 가격 설정을 제한하고 있다. 그 결과, 다른 부유한 나라들의 약값은 미국보다 25~55% 낮다. 특허 독점이 없는 경쟁 시장에서, 처방 약은 미국보다 70~75% 싸게 팔린다. 미국이 압박하는 무역 협정은 다른 나라들이 미국에 근접한 수준의 약값을 지급하도록 설계돼 있다. 상대국의 국부를 유출하고 시민들의 건강을 위험에 빠뜨리는 셈이다.
원칙에서 볼 때, 미국과 자유 무역 협정을 맺는 대가로 각 나라가 얻는 편익은 세계에서 가장 큰 수입 시장에 대한 무제한의 접근이다. 지난해 말 이 시장의 규모는 연간 2조1천억달러가 넘었다. 이런 규모의 수입 시장은 높은 약값을 치르고 경제정책의 재량권을 넘길 만큼 충분히 가치가 있는 전리품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런 식의 상충관계로 파악하는 것은 그릇된 일이다. 미국은 연간 8천억달러에 육박하는 무역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사실상 세계의 모든 경제학자들이 이런 규모의 적자는 지속될 수 없음을 인정하고 있다. 현재 미국의 무역적자는 막대한 양의 달러를 매입하는 외국 중앙은행들(특히 일본과 중국의 중앙은행)이 지탱하고 있다. 수천억달러의 자산을 사들이는 방식으로 이들 중앙은행은 달러화 가치를 끌어올리고 있으며 미국 국민들이 매우 값싼 수입품을 얻게 하고 있다. 아마도, 이들 중앙은행은 그리 멀지 않은 미래의 어느 순간에 미국 소비자들에게 보조금을 주는 것과 마찬가지인 이런 행동을 멈추고 자국민들에 더 잘 봉사하는 용도로 자원의 물꼬를 돌릴 것이다. 이런 일이 발생하면, 달러화 가치는 폭락하고 미국의 수입은 지속 가능한 수준으로 줄어들 것이다. 이는 4천억~5천억달러만큼 미국 수입 시장 규모의 축소를 동반하게 된다.
이런 사실은 미국이 맺는 무역 협정들을 평가할 때 중요하다. 상대국들이 앞으로 10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적용되는 무역 협정을 통해 오늘날의 미국 수입 시장에 접근하지 못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들 국가는 4천억~5천억달러만큼 줄어드는 수입시장에 접근하게 될 것이다. 미국 생산자들에게서 시장 점유율을 빼앗아올 기회를 갖는다기보다는, 급속히 쪼그라드는 시장을 두고 중국, 베트남, 인도와 경쟁해야 할 것이다. 미국에 강하게 치우친 지도자들이 미국과의 무역 협정을 체결하는 것은 그렇다고 치자. 그러나 어떻게 자국의 경제적 번영에 현신하는 정치인이 자발적으로 그런 협정에 서명하는 것인지를 이해하기란 어렵다.
역동적인 민주주의를 가진 나라들에서 미국과의 양자 무역 협정이 주는 장점들에 관한 활발한 논의가 있을 수 있다. 협정의 찬성자들이 정직함을 보여주고 싶다면, 이들 협정을 묘사하는 데 이용되는 프로파간다(선전)를 중단하는 데서 시작할 수 있다. 처방약에 대한 독점적 특허 보호를 강화하는 무역 협정은 “자유” 무역 협정이 아니다. 모든 곳에서 사람들은 자유를 사랑한다. 하지만 거대한 미국 기업들을 주로 이롭게 하는 무역 협정에 서명하는 것은 자유의 대의를 드높일 수 있는 분명한 길이 아니다.
딘 베이커/미국 경제정책연구센터 공동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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