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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2.14 18:06 수정 : 2005.02.14 18:06

9일 동안의 징검다리 설 연휴가 끝났다. 경기가 풀리는 낌새가 보여서일까. 아니면 또다른 이유가 있을까. 이 설 연휴를 앞뒤로 세상 인심이 판연히 달라진 것을 느낀다. 마치 딴사람을 보는 듯하다. 옛 시인은 태산의 높음을 읊어 “산의 앞쪽과 뒤쪽이 밤과 새벽을 갈랐다”고 했다. 이번 설 연휴 또한 세월에 한 획을 그은 것처럼 어제와 오늘을 선명하게 가르고 있다.

체감경기는 여전히 바닥이지만 최근 들어 곳곳에서 좋은 조짐들이 보인다. 기업경기 실사지수도, 소비자 기대지수도, 서비스업 생산도, 종합주가지수도 달음박질을 시작했다. 수출도 호조세요, 환율도 안정세다. 백화점과 할인점의 설 대목 매출이 10~30%씩 늘었다. 바야흐로 내수경기가 회복기미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실로 4년 만에 맞는 소중한 반전 기운이기 때문일까. 행여 이 흐름이 깨지거나 바뀔세라 걱정하며 조신하는 모습이 곳곳에서 감지된다. 남 탓, 정권 탓 하던 때와는 딴판이다.

징검다리 연휴를 맞아서도 이 장기 휴무가 모처럼 상승 분위기를 타고 있는 경기에 찬물을 끼얹지나 않나 조바심을 낸다. 정치권까지 “국내 여행을 하자” “우리 농산물로 선물을 보내자”며 내수 북돋우기에 나섰다. 경기회복을 위해 국민적 역량을 끌어모으려는 안간힘이다. 연초만 해도 “잘될 리가 있나” 하고 코웃음치던 사람들도 크게 달라졌다. “그래 한번 더 속아보자”며 마지못한 듯 호응하지만 속내는 뭔가 만들어보자는 기운으로 충만해 있다. 눈물겨운 일이다.

설날 사랑방 여론도 지난해 추석 때와 판이하게 바뀌었다. “돈이란 남자가 여자를 위해 쓰는 것”이라며 “성매매 방지법이 경기를 죽였다”고 성토하던 목소리는 잦아들었다. 대신 “성이 매매의 대상일 수 없으며, 성매매는 살인이나 강도 같은 범죄”라는 인식이 작동하기 시작했다. “집값이 오르는 재미에 술도 사는데 술살 일이 없어졌으니 경제가 살아날 리가 없다”는 강변도 “그래도 집값은 올라서는 안 된다”는 주장에 밀렸다.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이 비전이다”, “양극화 해소는 서민 살리기에 달렸다”는 처방은 이제 상식으로 자리잡았다. 금석지감이 든다.

정치권 판도 또한 크게 흔들린다. 최근 들어 열린우리당은 상승세고 한나라당은 하락세다. 지난해와는 사뭇 다르다. 출자총액 제한제나 부동산 투기 대책 등 개혁을 한다며 내놓은 정책이 오락가락해 일관성에 끊임없는 의문이 제기되는 데서 보듯 열린우리당이 특별히 잘하는 것이 없다. 그런데도 이런 역전 현상이 빚어진 것은 한나라당이 잘못한 탓에 기인한다.

한나라당은 박근혜 대표부터 말로는 ‘중도보수’라면서 행동은 ‘강경수구’로 서로 다르다. 신용을 잃을 수밖에 없다. 지난해 정기국회는 4대 개혁법안을 저지한다는 구실을 내세우며 색깔론 전략으로 시종했다. 당장은 이념논쟁으로 국민의 이성을 마비시켜 여론을 양분하고 국민을 줄세워 국면을 넘겼지만, 지긋지긋한 싸움판이 끝나고 흙탕물이 가라앉자 냉정을 되찾은 국민들로부터 심판을 받는 처지에 놓였다. 국가보안법 폐기안 상정 거부, 과거사법 처리합의 파기 등 사사건건 강경하고 완고한 한나라당의 모습을 지켜본 사람들은 ‘역시 꼴통’이라며 가새표를 긋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누가 개혁적이고 알마나 정직한지 묵묵히 평가한다. 아침에 헷갈려도 저녁이면 바로 분별한다. 정치인은 이 민심을 두려워해야 한다. 지금 국민은 경기회복의 소중한 기회를 살려내기 위해 마음을 모으고 있다. 모두 함께 재계하는 심정으로 공을 들이고, 이 염력으로 경기를 연착륙시켜야 한다. 재를 뿌리거나 부정타는 짓은 안 된다. 말 한 마디라도 신중해야 한다. 사람도 가려 써야 한다. 북핵이 돌출했지만 이 또한 남북 화해 기조를 지키며 정성을 들인다면 큰 변수일 수 없다.

이 시대 최고의 정체성은 개혁과 통합이다. 이제는 얼마나 잘 화합하는지를 수권 역량의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정치권은 공동체의 운명을 함께 짊어진다는 자세로 나라 일을 보살피라. 9일 동안 정치권 다툼 보지 않으니 살 것 같다고들 한다. 지금 국민은 설날 전의 그들이 아니다.


조상기 논설실장 tumo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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