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2.14 18:31
수정 : 2005.02.14 18:31
환경분쟁조정위원회 등 행정기관의 분쟁조정 제도는 정부가 중립적인 조정자로서 주민과 기업 간의 손해배상 청구와 같이 작은 분쟁을 해결하는 데는 효과적이지만, 행정기관이 당사자인 사회갈등의 예방과 해결에는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문제점이 있다. 국책사업에 이의를 제기하는 주민 또는 시민단체들이 갈등의 당사자가 운영하는 분쟁조정위원회의 중립성과 공정성을 신뢰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법원에 소송을 제기해 보지만 법원도 역시 한계가 있다. 천성산과 새만금 갈등에서 보듯이 법원의 판결 내용에 따라 정부와 주민 또는 시민단체 중 어느 한쪽이 승복하지 않음으로써 갈등이 계속되는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국회도 갈등을 해결하는 기관이지만 정치인들은 자신을 선출한 지역 또는 집단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이 우선이고 갈등을 조정하는 기능은 그 다음이다.
그러나 국회가 공공갈등을 효과적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더 중요한 이유는 항상 다수의견만을 대변하기 때문이다. 사회갈등은 다수의견을 무시한 소수의 횡포뿐만 아니라, 소수의견을 무시한 다수의 횡포로 인해 발생하기도 한다. 국책사업에 이의를 제기하는 주민과 시민단체들이 국회에 청원을 내지만 결정은 다수결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소수의견을 무시한 갈등은 국회도 별 도움이 되지 못하는 문제점이 발생한다. 그러면 소수의견의 반대로 인한 갈등은 어떻게 해결하나? 그보다 다수의견에 승복하지 않는 소수의견까지 설득하는 것은 민주주의 원칙에 어긋나는 것 아닌가?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나온 대안이 합의회의, 시민배심원, 공론조사, 규제협상 등의 참여적 의사결정 방식과 조정, 중재, 사실조사 등의 대안적 분쟁해결 수단이다. 이 방법들은 모두 행정기관의 의사결정 과정에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한다는 것과 중립적인 제3자의 도움을 받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다수의견을 무시하는 소수의 횡포는 행정기관이나 법원 또는 국회에서 바로잡으면 되지만, 소수의견을 무시하는 다수의 횡포는 공정하고 중립적인 사실조사 결과를 토대로 사회적 합의절차를 통해서 권력기관이 아닌 시민들이 소수의 반대의견을 설득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러한 합의절차를 거친다고 해서 소수의견을 모두 설득할 수 있다는 보장은 없지만, 소수의견이 다수의견에 승복할 수 있는 명분으로 이보다 더 나은 방법은 아직 없다.
천성산과 새만금 같은 사회갈등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소수의견을 무시함으로써 절차의 갈등을 유발하는 각종 법령들을 고치고 새로 만드는 제도적인 노력이 중요하다. 갈등관리기본법의 제정이나 환경정책기본법 등의 개정이 여기에 해당한다. 예를 들면 환경영향평가 대상 사업들의 계획 수립과 집행에 관한 55개 법률 중에서 주민참여 절차를 규정하고 있는 법률은 7개에 불과하고, 이 7개 법률마저도 주민참여 제도의 형식만 있을 뿐, 실제 운영과정을 보면 찬성의견만 수렴하고 반대의견은 무시하는 행정편의주의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미국, 프랑스, 일본 등은 도로를 건설할 때도 사업의 구상단계부터 시민참여 제도를 도입하여 지역 주민, 환경단체, 도로 이용자 등 이해 관계자들과 함께 도로의 필요성부터 위치, 규모, 매연과 소음 방지대책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협의하여 결정한다. 우리나라도 이러한 시민참여 제도를 도입하여 각종 개발사업의 타당성 검토절차를 주민과 환경단체들이 참여하는 사회적 합의절차로 활용한다면 환경영향평가 또는 사업의 집행 단계에서 벌어지는 사회갈등을 예방할 수 있을 것이다.
크게는 천성산과 새만금, 방사성 폐기물 처분장 터 선정과 같은 국책사업부터, 작게는 지자체의 쓰레기 매립지와 소각장을 둘러싼 사회갈등까지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 법령, 사업의 입안단계부터 정부와 국민, 다수와 소수가 함께 의논하고, 결정하는 사회적 합의 행정으로 바꾸지 않으면 갈등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사회갈등을 효과적으로 예방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국민 간의 합의절차뿐만 아니라 다수의견과 소수의견 간의 합의절차도 필요하다.
신창현/환경분쟁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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