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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3.12 17:59 수정 : 2006.03.12 19:27

[‘한-미 FTA’ 연속 기고] 1. 배경과 의미


정부가 최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시작을 선언했습니다. 정부는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밀어붙이고 있는데, 협상안의 내용은 고사하고 지금까지의 경과조차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협정의 영향과 효과에 대해서도 장밋빛 전망에서부터 협정무용론, 대미종속론까지 다양한 의견이 나옵니다. 이런 궁금증을 풀기 위해 관련 전문가들의 진단과 전망을 6차례에 걸쳐 싣습니다. 편집자

전창환 한신대 국제경제학과 교수
지난해에는 양극화 문제가 전사회적 의제로 부상하면서 많은 관심과 논의를 불러일으켰다. 올해에는 양극화 해소를 위한 구체적이고 가시적인 정책처방이 나올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이 양극화를 해소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정부의 해괴망측한 억지논리에 그저 어안이 벙벙할 뿐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 추진 과정과 절차는 과연 현 정부가 참여정부인지 자체를 의심케 한다.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조차 2004년 말 우리 정부가 내비친 협정 체결 의향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음에도, 정부가 밀실에서 전격적으로 협정 체결을 추진하기로 가닥을 잡고 미국에 구걸한 이유를 도무지 알 수가 없다. 2004년 말 이래 교착상태에 빠진 한-일 자유무역협정의 경우 협상을 위한 사전 연구 및 양국간 사전 논의가 여러 차례 있었으나, 이 협정보다 사안의 중요성이 더 큰 한-미 협정의 경우 사전연구팀이 전혀 공개되지 않았으며 연구검토 결과의 중간공개나 심지어 최소한의 공청회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동아시아 나라들 중 양국간 자유무역협정 체결에 아주 적극적일 뿐만 아니라 우리보다 먼저 미국과 협정을 체결한 싱가포르 사례는 많은 것을 시사해준다. 싱가포르는 한국·대만 등에 비해 훨씬 개방적이고 자유시장형 경제시스템에 가깝기 때문에, 미국-싱가포르 협정은 몇 달 내 아주 적은 횟수의 협상으로 체결될 수 있을 것으로 관측되기도 했다. 하지만 2000년 12월에 시작된 협상은 2년 이상 지속되어 2003년 1월에야 결실을 맺을 수 있었다. 우리의 경우 1년 안에 협상을 종결해야 하니 주도면밀하게 이루어질 리가 만무하다.

싱가포르든 한국이든 미국과 체결하는 협정은 본질적으로 비대칭적이다. 즉 미국은 상대국에 농산물시장은 말할 것도 없고 금융서비스, 의료, 문화, 정보통신 인프라, 투자자유화, 노동·환경 조항까지도 포함한 포괄적인 시장접근을 요구하는 데 비해, 미국은 민감한 산업부문과 생산라인에 관련된 원산지규정을 빌미로 얼마든지 선별적이고 차별화된 시장접근 일정을 제시할 수 있다. 또한 상대국에 비해 관세율이 낮고 시장개방 정도가 훨씬 높은 미국으로서는 다른 나라들과 협정을 체결한다고 하더라도 일부 품목과 산업을 제외하면 손해 볼 게 거의 없다. 이에 비해 상대국은 미국과 정반대의 상황에 처한다.

미국과의 협정 체결이 초래할 더 심각한 문제는 협상이 광범위한 신자유주의적 구조개혁을 수반한다는 점이다. 일례로 미국은 싱가포르와의 협상 과정에서 시장개방은 말할 것도 없고 기간 국유기업의 민영화까지 언급했다. 나아가 1997년 동아시아 외환금융위기 때 위기의 파급을 차단하는 데 크게 기여했던 것으로 평가되는 싱가포르 통화당국의 자본통제 장치마저 철폐할 것을 요구했다. 이런 태도는 현재 진행 중인 타이와의 자유무역협정 협상에서도 그대로 관철되고 있다. 문제는 미국이 타이·싱가포르보다 시장과 경제규모가 큰 한국에 훨씬 강도 높은 시장개방과 구조조정을 요구할 것으로 우려된다는 점이다. 사실 최근의 양극화가 97년 외환금융위기 이후 김대중 정부가 국제통화기금의 구조조정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실행했던 데서 기인한 바 크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한-미 자유무역협정 체결을 통한 추가적인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이 양극화 해소는커녕 사회통합 기반을 송두리째 허물어버릴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 없다.

끝으로 동아시아의 지역통합과 연대는 동아시아가 자유화·세계화 물결에 합류하면서도 동아시아 특유의 다양한 발전모델들을 확립하는 데 필수불가결한 통과지점임에도 불구하고, 한-미 자유무역협정 체결은 모처럼 활성화하는 동아시아 지역 차원의 협력과 연대 움직임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 이미 아세안 내에서 미국과 협정을 체결했거나 협상 중인 싱가포르·타이와 그밖의 아세안 나라 간에 동아시아 지역 통합의 방식을 둘러싸고 경쟁과 대립 양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은 안타깝다.

중국의 급부상과 한-중 경제교류의 강화를 견제하려는 미국의 의도가 한-미 협상에 강하게 반영된다는 점 역시 동아시아의 지역 협력과 연대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농후하다. 한국과 일본이 중국을 중심으로 한 다자주의적 지역통합에 말려드는 것은 미국으로서는 최악의 시나리오다. 미국이 일본 및 한국과의 군사·안보 차원의 쌍무적 동맹 체제를 자유무역협정을 포함한 경제영역에서도 관철시키고자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전창환/한신대 국제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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