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3.17 17:57
수정 : 2006.03.17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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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종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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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햇발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다. 전 세계에 세 곳밖에 없다는 갯벌을 죽이는 게 합법적이라는 판결을 대법원이 내렸다. 국가가 앞장서서 벌이는 미개한 행위에 법적으로 면죄부를 주었다. 이미 너무 많이 벌여 놓았다는 게 면죄부의 이유다.
남미 아마존의 밀림은 생물자원의 보고이고 세계의 허파 구실을 하므로 보존해야 한다고 교과서에 쓰여 있다. 그런 아마존을 불도저로 밀어버린다는 뉴스를 들으면 우리는 그 사람들이 참 미개하다고 생각한다. 객관적으로 남의 일을 볼 때는 무지하게 여겨지는 행위도 막상 우리 앞에 닥치면 합법적으로 바뀐다. 욕심이 눈앞을 가리기 때문이다. 정권 욕심과 돈 욕심이다. 정치권과 행정 관료들이 쉽게 대형 사업을 벌이는 이유는 생색은 내면서도 자기 돈이 아니라 국민의 세금을 쓰는 것이고, 대형 사업을 벌일수록 자리와 떡고물은 더 생길 가능성이 높은 데 반해, 실패해도 책임은 별로 지지 않는, 손해 볼 게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정부가 왜 하는지 모르면서도 일단 시작만 해 놓으면 합법화시킬 수 있는 시대착오적인 판례를 남겼다. 사법부가 사회적 파장이 크고 선례적 가치가 있는 중요한 사항이므로 심혈을 기울였다는 결과다. 15년 동안 못 찾아낸 개발목적을 아직도 더 기다려야 국토연구원이 만들어 낸다고 하는데 말이다.
대법관 13명 중에서 2명은 새만금 자연의 특수성을 이유로 사업취소 의견을 내었고, 4명은 공사의 지속을 전제로 친환경적인 개발을 주문하였다. 판결 이후 농림부와 전라북도는 친환경적인 개발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희귀하며 생산성이 높은 자연을 없애면서 논하는 친환경적인 개발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바다와 갯벌은 사람들이 훼손만 시키지 않는다면 농사처럼 따로 비료나 농약을 주지 않아도 어패류를 지속적으로 얻어낼 수 있다. 이런 터전을 말살하면서 고작 현행법상 당연한 행위인 물이 썩지 않게 하는 대책이 친환경적인 개발인가? 간척되어 생기는 땅을 녹색의 골프장으로 덮으면 친환경적인가? 13명의 대법관이 모든 자료를 검토하였다니 친환경적인 개발이란 어떤 것인지 가르침을 받고 싶다. 정책적 판단이 아닌 법률적인 해석으로서의 친환경적 개발은 무엇인지.
15년이 넘는 긴 논란이 있는 동안 제대로 된 사회적 조정능력은 우리에게 없었다. 대법원이 밀어붙이기식 무모한 정책추진에 정당성을 부여한 만큼 사회적 조정기능의 확보는 더욱 절실해졌다. 제대로 된 치료를 위하여 비록 고통스러울지 몰라도 올바른 진단은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 노무현 대통령이 해양수산부 장관 시절 새만금 사업 추진을 반대하던 소신을 왜 바꾸었는지 고백부터 해야 된다. 새만금을 지키자는 새만금생명학회의 핵심적인 학자를 대통령자문기구인 지속가능발전위원회의 위원장으로 임명한 마당에 소신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경위를 파악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특히 이 위원회에서는 갈등해결정책전문위원회까지 만들었는데 새만금 문제에서 실패한 원인이 무어라고 파악하는지 소상히 밝혀야 한다. 대통령의 솔직한 고백만이 국무조정실, 농림부, 해양수산부, 환경부 같은 관련 부처들의 속내를 털어놓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이도 저도 못하겠으면 차라리 국민투표라도 하자. 뒷생각 없이 전국을 들쑤시며 무모하게 낭비되는 헛돈보다는 싸게 먹히면서 국민의 의사는 올바로 반영될 수 있을 것이다. 국민들은 기다릴 만큼 기다렸고 절망할 만큼 절망했다. 이제 좀 뭐라도 제대로 해보자.
김상종/객원논설위원·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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