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3.07 20:33
수정 : 2005.03.07 20:33
이르면 이번주에 다시 여소야대로 간다. 선거법 위반으로 항소심에서 당선무효에 해당하는 형을 선고받은 열린우리당 두 의원이 이번주 목요일과 금요일에 각각 대법원 확정 판결을 받는다. 항소심대로라면 금요일에 국회의석은 재적 294석 가운데 열린우리당이 147석으로 여야 동수가 돼 열린우리당의 과반이 무너진다. 또 이번달 안에 두 건 더 당선무효가 나올 가능성도 있다. 개혁세력의 사상 최초 과반의 감격이 별 성과도 없이 1년도 안 돼 꺼지고 있는 것이다.
이 여소야대는 이론상 달포 남짓에 끝날 수도 있다. 4월의 재·보선에서 대승한다면 과반을 탈환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아무래도 힘겨울 것이다. 우선 선거의 심판적 성격에 비춰 불법을 저질러 당선무효가 된 쪽이 재당선한다고 보기 어렵다. 또 재·보선은 투표율이 낮은데다 여당의 현재 인기나 지역 사정으로 보아서도 그렇다. 재·보선 뒤에도 계속 ‘당선무효형’의 공급이 예정돼 있기도 하다. 결국 노무현 정권 끝까지 내리 여소야대를 면치 못할 것이다. 열린우리당은 사법부가 유독 자신들에게 가혹하다며 부르터 있으나 불법 엄벌 의지에 박수를 보낼망정 감정을 가질 일은 아니다.
여소야대는 오래 전부터 예고돼 왔다. 그러나 마치 바둑돌이 머릿속에서 생각할 때와 정작 반상에 놓일 때 느낌이 전혀 다르듯 크게 충격적이다. 과거 여소야대 때 비타협, 대결정치, ‘사사건건 물고 늘어지기’, ‘집권야당’ 따위 개념이 주마등처럼 스친다. 하나같이 정국 불안의 요소들이다. 북한으로서도 여소야대는 ‘초미의 문제’다. 북쪽 매체는 국회가 다시 ‘극우익 보수 세력의 활무대’가 되고, 남한이 ‘동족 대결의 동토대’로 되는 것 아니냐고 우려한다. 지난 시절 ‘퍼주기론’의 악몽을 떠올렸음 직하다. 모처럼 살아나는 기미를 보이는 경제는 또 어떻게 되나 하는 것도 큰 걱정이다.
여당은 이미 ‘주제’를 파악하자, ‘주화파’가 되자, 알아서 기자로 대응책을 세운 품새다. 실용주의와 대화·협상이 강조되는 것으로 알 수 있는 일이다. 전진과 도약의 기반이라고 할 개혁작업을 지난 1년 동안 완성하지 못했는데, 또하나의 과제인 경제회복은 발등의 불이 돼 있다. 가뜩이나 여소야대의 속성상 ‘안정’이 최우선 목표가 될 수밖에 없다. 어떡하겠는가. 이제는 “국가보안법은 사문화된 것이나 같다”, “개혁입법들이 안 되고 있는 것은 야당 탓”이라고 자위하는 것말고는 달리 할 일이 없다. 의장 경선에서 나오는 ‘여전히 개혁’이라는 구호가 공허한 이유다.
그러나 이런다고 안정이 확실히 담보되지 않는다는 데 문제가 있다. 앞으로 끊임없이 정계 개편 소문이 나돌 것이다. 또 야당과 사안별로 정책공조를 하는 움직임도 나타날 것이다. 그러나 공작은 이제 없다, 각 당은 마이웨이를 외친다, 아직 배신감에 치를 떠는 당도 있다. 여당이 납작 엎드린다고 뜻대로 안정이 얻어진다고 보기 어렵다.
이런 때 국민의 처지에서는 오히려 야당의 처분이 중요하다. 개혁도 안정도 야당의 봐주기에 달렸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는 야당의 책임이 훨씬 무거워졌다. 자칫 ‘야소’ 때의 투쟁적인 자세로만 일관하다가는 경제에 찬물을 끼얹는다는 덤터기를 쓸 수도 있다. 지난날 야대 때 디제이가 야당으로서 협조할 것은 과감하게 협조함으로써 수권정당의 이미지를 강화해 갔던 일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지금이 개혁을 당위로 여기는 사람들에게 점수를 따는 기회일 수 있다. 여야 합의까지 물리력으로 뭉개려드는 식으로는 씨알도 안 먹히는 시대 아닌가.
역설적으로 여대야소 때보다 여당과 야당 두루 개혁적인 태도가 어느 때보다 더 중요하게 됐다. 바둑알 몇 개를 잃더라도 선수를 잃으면 안 된다. 작은 것을 버리고 큰 것을 취할 줄도 알아야 한다. 이는 다음 대선과도 유기적인 관계가 있다.
여소야대가 개혁과 안정이 서로 내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계기가 되기를 간곡히 빌어 본다. 여야가 백성을 바라보면서 정치를 한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그것이 결국은 자신들을 위하는 길이 되기도 할 것이다. 여소야대를 대결과 ‘불임’의 시대가 아니라, 여야가 함께 책임지는 시대로 여기는 슬기를 기대한다.
조상기 논설실장
tumo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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