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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3.08 19:09 수정 : 2005.03.08 19:09

2005년도 세계경제포럼이 열린 다보스는 스위스 취리히 공항에서도 세 시간이나 떨어진 궁벽한 고원이었다. 인구도 1만여명밖에 안 되는 아주 조그만 마을이었다. 이 작고 불편한 산촌에 수십 년째 세계적 과제를 논의하기 위해 온세계 경제·사회·정치 지도자들이 모인다는 것이 신기했다.

올해는 700여 지도자들이 참석했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 칼리 피오리나 전 휼렛패커드 회장 등 낯익은 경제계 지도자는 물론이고,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 등 각계의 지도자들이 모였다. 우리나라에서도 30여명이 참가했다.

이들은 첫날 글로벌 타운홀 미팅이라는 이름으로 지구촌 주민회의를 열어, 십여 차례의 즉석 전자 투표 방식을 통해 세계 경제·사회 지도자들이 2005년에 중점 연구·협력할 과제를 선택하였다. 세계경제포럼 주최 쪽이 준비한 12대 대과제 외에 즉석에서 추가된 2대 대과제를 포함하여 총 14대 과제 중에서 우선순위를 가려 6개의 대과제를 선택해 내는 세 시간여에 걸친 즉석 전자투표 방식은 700여명의 대집단을 순식간에 긴장감과 흥미진진함 속으로 몰아넣고 있었다. 결과는 더욱 놀라웠다. 14대 주제 중에서 상위 6개로 뽑힌 것들은 놀랍게도 경제적 주제라기보다는 사회적 주제 또는 환경적 주제들이었다. 특히 5일 내내 주로 논의된 것들은 빈곤 극복, 양극화 없는 세계화, 기후변화 공동 대처, 약자에 대한 교육기회 등 4대 주제였다.

지난 10여년 다보스포럼에 대해 필자가 가지고 있던 막연한 편견이랄까 배척감이 부끄러웠다. 한 마리 양밖에 없는 서민 대중과 대비해 99마리 양을 가지고서도 만족하지 못하고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부의 증식만을 습관적으로 추구하는 비인간적 그룹이라고 매도하던 필자의 마음은 어느덧 눈 녹듯 녹고 있었다.

200여 개나 되는 소주제별 회의는 본회의장 내 십여 곳 중회의장과 주변 십여 곳 호텔의 중회의장들을 이용하여 열렸다. 아침 7시부터 시작되는 소주제별 토론은 어떤 날은 10시가 넘어서야 끝나곤 했다. 5일 동안 호텔 사이를 이동하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열심히 들어보려 했지만 겨우 20여 주제에만 참가할 수 있었다.

소주제별 회의장에서는 뜻밖의 인물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도널드 존스턴 경제협력개발기구 사무총장, 대니얼 에스티 예일대 교수, 2004년도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케냐의 그린벨트 운동가 왕가리 마타이 등 수많은 분들이 겨울 학교에 들어온 학생들처럼 얌전히 토론에 참여하고 있었다. 다보스에서 새로운 체험을 하는 닷새 내내 필자는 꿈속에 사는 느낌이었다.

경제적 성과만 놓고 보면, 우리나라는 어느덧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나라의 하나임에 틀림없다. 국민소득이 올해에는 1만6천달러를 넘을 것이고, 총국민소득으로 보아도 세계 10대 경제대국이요, 외환보유액으로는 세계 4대 대국에 들어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사회적 성과를 보면 3700만 생산가능 인구 중 40% 이상이 이런저런 이유로 경제활동의 기회를 가지지 못한 나라다. 그래서 고용률은 60%도 되지 않는다. 그나마 고용은 되었다고 하지만 3분의 1만이 정규직이고 3분의 1은 비정규직으로 전락하고 말았고 나머지는 자의반 타의반 영세 자영업자가 되어버렸다.

이러한 경제·사회가 오래갈 수 있을까? 매년 해외에서 수입하는 45조원이 넘는 에너지 비용을 20%만이라도 절약해 새로운 일자리 창출에 쓸 수는 없을까? 대기 오염도 줄이고, 세계적 노력에도 동참하고, 미래형 지식기반 일자리를 50만개 이상 새로 창출하게 하는 기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또, 연간 10조원 가까이 되는 유류 관련 교통세도 이제 환경파괴적 도로 확장 대신 우리나라에는 턱없이 부족한 고부가 가치형 서비스 산업 육성과 문화 및 여가산업 육성과 사회적 일자리 창출에 쓸 수 없을까? 추가로 50만명 이상의 지속 가능하고 보람 있는 좋은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을 터이다.


우리 정치·사회·경제 지도자들에게 경제적 성과 못지 않게 사회적 성과 및 환경적 성과까지 묻는 것은 10대 경제대국이 된 지금에도 아직 이른 것일까?

문국현/ 유한킴벌리 대표이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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