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3.09 20:19
수정 : 2005.03.09 20:19
안 그래도 시끄러운 세상살이에, 고려대학교 명예교수란 분이 ‘일제 식민지배는 축복’이었다는 발언을 하더니 빗발치는 비난의 화살에도 불구하고 군사평론가 지만원씨와 〈월간조선〉의 조갑제씨까지 구원투수로 등장해 또 한번 세상을 시끄럽게 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주류를 형성해 왔던 보수 기득권 세력의 뿌리를 아는 사람들에게는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지만, ‘아무리 그래도 …’하며 믿음을 가졌던 사람들에게는 심한 배신감이 들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이래저래 한국의 보수 기득권 세력이 위기에 처해 있음은 분명한 듯 하다.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이런 황당한 사태를 맞을 때마다, 그리고 그러한 주장을 하는 사람들의 너무 당당한 태도와 날로 발전하는 논리를 접할 때마다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한다. 물론 한승조 교수가 정확하게 지적했듯이 ‘대한민국은 친일하던 사람들이 만든 나라’이기 때문에 제대로 된 나라에서는 보기 힘든 이런 뻔뻔한 주장들이 나오는 사회적 맥락을 이해할 수는 있다. 모든 분야의 권력을 장악한 친일세력들이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그들의 삶을 합리화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보수 기득권 세력이 친일을 정당화하는 논리 역시 쉽게 이해될 수 있다. 보수 기득권 세력의 뿌리가 되는 친일파에게서 일본 식민지 시기는 고통의 세월이 아니라 축복의 세월이었기 때문이다. 그 식민시기 대다수 우리 겨레는 고통받았지만, 친일파는 일본이 나누어준 떡고물로 개인적 행복을 누릴 수 있었으니 그들에겐 식민지배는 축복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친일파의 후예들 역시 지금의 기득권을 준비한 일제시기를 억압의 시기로 기억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승조씨는 너무 솔직했다.
그들은 행복을 기억했지만, 많은 사람들은 고통을 기억했다. 따라서 고통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발언은 용서할 수 없는 일이고, 나아가 지금 여기서 그들이 과거의 고통을 재생산하려고 한다는 혐의를 잡을 수밖에 없다. 기억을 공유하지 않는 사람들, 그들을 과연 같은 겨레라고 할 수 있을까?
적어도 과거의 보수 기득권 세력들은 이 점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뿌리를 감추고 기억을 조작하려고 했다. 해방기의 친일세력들은 신탁통치 논쟁을 통해 민족주의 세력으로 둔갑했고, 이승만은 정권이 위기에 몰릴 때마다 친일데모를 선동했으며, 일본군 장교 출신의 박정희는 한국적 민주주의를 주장함으로써 겨레를 정권을 위해 동원했다. 하지만 지금의 보수 기득권 세력들은 이제 과거를 숨기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행복한 선민인 그들이 우매한 우리를 지도했다고 주장한다. 그들과 우리는 과연 하나의 민족인가?
민족이 민족이기 위해서는 그 구성원은 동등해야 한다. 민족에 관한 많은 논쟁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근대민족은 신분제의 해체를 통해 형성되었고, 그것을 통해 ‘우리의식’을 가질 때 민족으로 형성될 수 있다. 따라서 한 지역내의 주민들이 동등한 권리와 책임을 갖지 않는다면 그들은 같은 경제 공동체, 정치 공동체를 구성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같은 겨레라 할 수 없다. 이런 의미에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는 두 겨레, 두 개의 국민이 존재하는지도 모른다. 특권을 누린 겨레와 그렇지 못한 겨레, 우리는 그렇게 다른 겨레로 살고 있는지 모른다.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이고, 우리가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태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의 주장이나 행위를 이해할 수는 있다. 하지만 더는 자신들의 행위를 ‘민족을 위한’ 행위였다고 주장해서는 안 된다. 아주 솔직히 ‘잘먹고 잘살기 위해서였다’고 해야 한다. 그리고 그들과 다른 우리는 겨레에 대해 새로운 고민을 시작해야 한다. 민족이라는 미명에 이용당하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우리 내부에 또 다른 억압을 만들기 않기 위해서 이제 ‘우리가 누구’인지에 대해 고민을 시작해야 한다.김정훈/ 성공회대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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