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3.10 18:38
수정 : 2005.03.10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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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곤 사회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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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일처럼 밀려온 여론 앞에 책임 소재조차 밝히지 못한 채 장수를 떠내려보내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노무현 대통령이 이헌재 부총리의 사표를 수리한 직후, ‘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글’을 통해 ‘안타까운’ 심정을 밝혔다. 사실 경제계 일각에서도 ‘아까운 사람’이었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그의 후임으로 물망에 오르내리는 면면을 보노라면 ‘아쉬움’이 드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럼에도 대통령의 글은 솔직히 ‘이건 아닌데’ 싶다. 특히 ‘이 부총리 부인 땅’ 문제를 처음 제기한 〈한겨레〉로서는 소회가 남다르다. 한겨레가 ‘특종 욕심’에만 사로잡혀, ‘상업적 저널리즘’으로 이번 사안을 보도한 것은 결코 아니다.
국민들이 그랬듯이, 기자들도 ‘공직자 재산등록’ 현황을 통해 이 부총리의 재산이 90억원이 넘고, 특히 7년 만에 65억원이나 늘어났다는 사실이 놀랍기는 마찬가지였다. 도대체 어떻게 재산이 갑자기 불어날 수 있었는지 확인해야 하는 건 언론인의 임무였다. 취재 결과, 그에게 큰 ‘부’를 안겨준 경기 광주시 일대 땅은, 26년 전 그의 부인이 위장전입을 통해 매입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편집국은 토론에 들어갔다. ‘기사 가치’가 있다는 데는 두루 동의했지만, ‘어느 정도 크기로’ 보도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했다. 26년 전 민간인 신분으로 땅을 산 사실이, 지금의 ‘이헌재’를 옥죌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비록 위장전입이라는 불법적인 방법까지 동원됐지만, 그 시절 대부분이 그런 식으로 땅 사재기를 했던 것 또한 사실이다. 이 부총리로서는 ‘억울’하기도 했으리라. 더욱이 그가 막 살아나려는 경기 회복의 불씨를 한창 지피고 있었기에, 고민은 더욱 컸다. 논란 끝에 1면 머릿기사로 결정됐다. 그가 부동산 정책을 포함한 한국 경제를 총지휘하는 ‘장수’였기에, 더욱 엄격한 도덕적 잣대를 들이댈 수밖에 없었다.
〈한겨레〉는 후속 취재를 통해 그의 부인 소유의 전북 고창군 일대 땅이 지난해 연말 ‘지역특구’로 지정된 사실도 알아냈다. 지역특구 지정의 최종 결정권자는 바로 재정경제부 장관을 겸하는 이 부총리 본인이었다. 연유야 어쨌든, 공직자 이해상충 금지의 원칙에 어긋나는 것이었다. 특종 욕심이 났지만, 좀더 심도있는 취재를 한 뒤, 또 한번 고민했다. 그가 비록 최종 결재는 했지만, 적극적으로 개입한 것은 아니라고 판단해 보도를 미뤘다.
그 뒤 다른 언론들이 뒤이어 이런저런 의혹을 쏟아냈고, 그는 결국 낙마했다. 그는 떠나면서 “결코 투기를 한 것은 아니다”라고 했지만, 투기든 투자든 혹은 불법이든 편법이든, 그건 사태의 본질이 아니다. 결과적이긴 하지만, 부동산 매매를 통해 획득한 그의 엄청난 ‘불로소득’은, 해마다 치솟는 전세금을 감당하지 못해 변두리로, 다시 쪽방으로 쫓겨가는, 불경기에 지친 서민들의 가슴을 ‘뻥 뚫리게’ 했다.
대통령은 “26년 전 민간인 신분 때의 일이고, 본인이 아닌 부인의 문제였다”고 ‘신원’했다. 하지만, 이런 인식은 공직자는 지위가 높으면 높을수록 전문성뿐 아니라, 그 신분의 높이만큼 더 높은 도덕성을 갖춰야 한다는 국민 정서와는 한참 동떨어진 것이다. 옛 어른들도 ‘수신제가’ 뒤 ‘치국’이라 하지 않았던가.
경쟁에서 다소 뒤처지는 사람들의 어깨를 부축해 함께 가자는 ‘분배 정책’을 표방한 탓에 ‘좌파’ 논란에 끊임없이 발목잡혔던 참여정부에, ‘시장경제’의 얼굴 격인 그는 공격을 효율적으로 막아내는 ‘훌륭한 장수’였다. 하지만 ‘땅 파동’이 터지던 그 하루 전날,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을 선언한 건 바로 대통령 자신이다. 이 부총리는 바로 그 ‘전쟁’을 선두에서 지휘해야 할 장수였다. 부총리의 엄청나게 불어난 재산에 ‘허탈감’을 느낀 사람들이 대통령의 ‘인식’에 더욱 ‘놀란’ 건 바로 이 때문이다.
대통령이 붙잡아야 할 것은 ‘도덕성의 화살을 맞은 장수’가 아니라, 그로 인해 ‘그보다 더욱 깊은 상처를 입은 국민’인 것 같다.
김정곤 사회부 차장
kk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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