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3.13 19:09
수정 : 2005.03.13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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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별아/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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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과 교우 관계를 오래 유지하고 싶다면 정치와 종교만은 대화의 소재로 삼지 말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나는 어떠한 정치적 견해 차이도 인정해야 마땅하다고 믿는다. 한 사회가 발전하는 데에 갈등은 피해야 할 어떤 것이라기보다 필연적인 과정이며 변화의 가능성이므로. 단, 자신과 정치적 견해가 다르다는 이유로 상대를 탄압하고 박해하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종교 역시 마찬가지다. 일월성신을 믿고 따르든 세상에 오직 하나뿐인 ‘그분’을 신봉하든 누구에게도 상대의 간절한 열망을 비웃거나 의심할 자격은 없다. 물론, 그 또한 자신의 신앙만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남에게 강요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그런데 정작 내가 정치적 견해의 차이나 종교 문제의 민감함보다 수용하기 어렵고 견디기 힘든 것은, 외모나 기호를 문제 삼아 왈가왈부하는 일이다. 기껏 차려입은 옷이나 남들과 조금 다른 취미를 두고 격식에 맞지 않느니 방종하니 간섭하는 일만큼 무례한 것은 없다. 유행이란 본래 남과 달라지기 위한 혹은 남과 같아지기 위한 심리에서 비롯되지만, 급변하는 그것을 따르고 좇는 일 또한 비난받을 이유는 없다. 타인의 취향에 함부로 잣대를 들이대고 가치판단까지 하는 것은 기실 편견에 지나지 않는다.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정치나 종교보다도 더 각양각색 다를 수밖에 없는 지극히 사적인 개인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일면 사소해 보이는 그 일상의 편협함이 정치에서 독재가 되고 종교에서 독단이 되고 획일주의 문화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대통령이 쌍꺼풀 수술을 한 모습을 드러냈다. 부창부수라고 부인도 사이좋게 아픔을 함께 나누고 나타났다. 말꾸러기들에게는 제대로 빌미를 제공한 셈이다. 집권 중기의 여유와 부드러움을 나타낸다느니, 국정에 쌓인 업무가 얼마나 많은데 생뚱맞은 여유를 부리는지 모르겠다느니, 꼭 필요한 수술이었다 할지라도 임기가 끝날 때까지 참는 게 나았다느니 별의별 평가가 다 튀어나온다. 눈꺼풀이 처져서 눈이 쉽게 피로해지고 시력이 약화되는 ‘상안검 이완증’을 고치기 위해 치료성형 수술을 받았고, 그것도 순전히 ‘개인의 돈’을 들여서 했다고 발표까지 해도 대통령의 쌍꺼풀은 구설수에 오른다. 아니, 설령 그가 더 매력적인 외모를 갖기 위해 수술을 감행했다고 하면 어쩔 것인가. ‘못생겨서 죄송’하기까지 한 사회에서 안면기형으로 처치가 꼭 필요한 환자들과 간단한 수술로 건강을 회복할 수 있는 노장년층이 치료성형을 망설이는 이유도 남의 외모에 대한 이런 쓸데없는 오지랖들 때문이다.
대통령의 쌍꺼풀보다 주시해야 할 것은 그가 삼일절 행사에서 했던 연설의 내용이다. 제국주의의 침략과 식민지배는 아직도 과거의 영역으로 흘려보낼 수 없는 현재진행형의 역사다. 강제 징용 피해자들과 위안부 할머니들은 배상은커녕 사과조차 받지 못했으며, 반성할 줄 모르는 제국주의자들은 시시때때로 망언을 지껄인다. 굴욕적인 한일협정은 전면적으로 재협상해야 하고, 친일파의 재산은 환수해야 하며, 좌우의 이념대립을 빌미삼아 기득권을 유지해온 매국노들은 처단해야 마땅하다. 그리하여 대통령은 우리의 ‘지도자’들이 지금껏 피하거나 외면해왔던 이 지당한 시대의 요구를 국민을 대표하여 공표했다. 이것이 정말 국내용 ‘쇼’인지 역사를 바로세우기 위한 당찬 의지인지는 두고 볼 일이다. 하지만 적어도 그 연설의 내용이 덜 아문 쌍꺼풀보다 백배는 더 중요하다는 것은 확실하다.
좋은 사회라면 공적인 영역에서 더욱 엄정한 반면 사적인 영역에서 철저히 개인의 자유를 보장해야 옳다. 그리고 내 경험으로 미루어보아, 대통령의 쌍꺼풀 수술은 대단히 잘 된 편이다. 쌍꺼풀은 무죄다. 문제는 얼마나 그 눈을 부릅뜨고 단호히 약속을 지켜내느냐 하는 것뿐이다.
김별아/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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