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3.13 19:35
수정 : 2005.03.13 19:35
ㄱ 선배, 안녕하십니까?
지난주 이헌재 경제부총리의 사임 뒤 만났을 때 선배의 홍조 띤 얼굴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집사람도 흥분합디다.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선배는 부총리를 모신 자신이 이렇게 말하는 게 도리가 아닐지 모르겠다며 조심스러워했죠. 힘든 생활을 묵묵히 견뎌온 대다수 재경부 공무원들은 아마 같은 심정일 것이라고도 했습니다. 솔직히 재경부 국장 중에서도 잘나간다는 ㄱ 선배에게 그런 얘기를 들은 것은 뜻밖이었습니다.
며칠 뒤 만난 ㅇ 국장은 언론에 화살을 겨누더군요. 부총리의 경기도 광주와 전북 고창 땅을 둘러싸고 숱한 의혹이 제기됐지만, 확인된 것은 거의 없지 않으냐고요. 위장전입은 확실해 보이지만, 노무현 대통령의 말대로 민간인 신분이었던 20여년 전 일이고, 그것도 부인이 한 일이었다고 말입니다.
이번 사태에는 부자에 대한 우리 사회의 반감이 작용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부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자본주의 발전에 부담으로 작용하는 게 사실입니다. 미국에서는 월스트리트 출신을 재무장관으로 기용하고 있지 않습니까? 신문사의 한 후배도 재산이 많다고 무조건 죄인시하는 풍토는 곤란하다고 정색하더군요.
선배, 이번 일을 계기로 우리 사회가 공직자에게 갈수록 엄격한 도덕성을 요구하고 있음을 절감했다고 말했지요. 사실 이헌재가 누굽니까? 비리에 연루돼 공직을 떠나고도 불사조처럼 살아나 두번이나 경제수장을 역임한 ‘성공한 관료’의 상징 아닙니까? 이헌재 하면 카리스마와 승부사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은행 자문료 파동으로 실각 위기를 맞자 ‘청와대 386’을 겨냥해 “시장경제 못해먹겠다”며 오히려 정면돌파를 시도할 때는 모두 혀를 내둘렀지요. 같은 관료들로부터도 ‘관치금융주의자’로 불리는 그가 ‘시장경제 원칙의 수호자’로 둔갑할 수 있었던 것도 언론을 갖고 노는 뛰어난 처세술이 있었기에 가능했겠지요. 이런 그도 투기의혹과 도덕성 시비에는 스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우리 사회가 이헌재 개인에만 매몰돼, 더 중요한 것을 제대로 조명하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이 전 부총리는 지난 1년간 경제정책, 특히 부동산정책을 책임졌던 경제수장이었습니다. 정부의 한 인사는 투기의혹이 처음 불거졌을 당시 “아하~” 하고 무릎을 쳤다더군요. 이 전 부총리가 그동안 왜 틈만 나면 참여정부의 부동산정책에 제동을 걸었는지, 이유를 알겠더라는 얘기였습니다.
‘부동산 불패 신화’를 제도적으로 막지 못해, 온 국민을 투기판으로 내몰고, 모두를 잠재적 범죄자로 만든 것은 전적으로 정부의 잘못입니다. 참여정부의 부동산 개혁은 이 악순환을 끊고자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전 부총리는 이런 노력을 끊임없이 좌절시키려 했습니다. 종합부동산세 도입과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세 중과 같은 개혁정책이 경기를 위축시킨다는 이유였지요. 지난해에는 부동산 개혁을 주도하는 이정우 청와대 정책기획위원장과 힘겨루기까지 벌였습니다. 만약 그의 기도가 성공해 부동산 개혁이 좌절됐다면, 사회적 손실은 그가 얻은 수십억 불로소득의 몇천배, 몇만배에 달했을 것입니다.
선배, 더 중요한 것은 그런 생각을 가진 이들이 이 전 부총리 하나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청와대의 한 인사는 지난해말 갈등이 한창일 때 이 전 부총리뿐만 아니라 재경부 고위관료들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벽처럼 느껴졌다는 말을 하더군요. 노 대통령 말대로 어쩌면 이번 사태는 곧 지난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언론의 관심이 온통 차기 부총리에 쏠린 것을 보면 벌써 잊혀졌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온 국민을 부동산 투기의 수렁에서 건져내기보다는, 제 잇속에 눈이 멀어 개혁을 좌초시키려는 이들이 존재하는 한 제2, 제3의 이헌재는 계속 나올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선배, 평소 청렴한 것으로 소문난 두 분의 전직 재경부 차관들이 승용차 대신 전철을 즐겨타고 다니는 게 관가에서 화제가 됐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우리 사회에 아직 그런 분들이 있다는 데 희망을 가져봅니다. 힘 내십시오. 곽정수 대기업전문기자 jskw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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