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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3.14 19:30 수정 : 2005.03.14 19:30

천성산 도롱뇽을 살리기 위한 지율 스님의 초인간적인 단식이 100일을 넘어서고서 겨우 멈춰 섰다. 혹시 기네스북에 이보다 더 오래 단식한 기록이 있을까 찾아보고 싶어진다. 고귀한 한사람 한사람의 희생이 있어야 인간의 가치 그리고 자연의 가치가 지켜진다는 게 참으로 안타깝다. 그래도 어려운 때에 이런 분들이 나타나 주시는 것만으로 나는 몸 둘 바를 모르겠다. 그분의 희생이 정녕 무가치한 일로 끝나지 않기만을 간절히 바랄 뿐이다.

이것과 비교하기는 그렇지만 동물들은 혁명가는 아니더라도 스트레스를 주는 환경이나 몸에 질병이 발생하면 단식으로 모든 걸 표현한다. 사람은 아프면 오히려 미음 한 술이라도 넘기려 하고, 그것도 안 되면 카테터를 이용해서 억지로라도 먹으려 하는데 이들은 물 한 모금조차도 거부해 버린다. 그래서 동물치료나 사육의 주안점은 식욕을 되살리는 일에 있다. 먹기 시작한다는 것은 적응과 회복의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동물병원에 있을 때 아픈 개들, 특히 ‘출혈성 장염’이라는 바이러스성 전염병에 걸린 개들이 내원하는 경우가 많았다. 예방접종이 일상화한 요즈음도 이 장염 바이러스는 스스로 진화해가면서 간간이 문제를 일으킨다. 증상은 엄청나 구토와 설사, 나중엔 거의 물 같은 혈변이 나오고 먹이를 먹지 않는다. 치료는 오직 영양소와 수분을 혈관을 통해 계속 공급해 주는 것밖에 없다. 그런데 이런 급성증상도 호전되려면 드라마틱하게 빠르다. 치료에 지칠 때쯤 개가 갑자기 일어서서 물을 핥기 시작한다. 다음엔 옆에 놓인 사료를 한두 개 먹기 시작하고 다음날이면 식욕이 거의 회복되어 버린다.

파충류들은 워낙 식이습관이 까다로워 정말 전문가나 끊임없이 연구하는 사육자들이 아니면 기르기가 어렵다. 악어나 거북 같은 큰 파충류는 그래도 좀 나은 편인데, 도마뱀이나 뱀들은 약간의 온도변화 그리고 피부가 조금만 말라도 도통 먹지 않는다. 억지로 먹여도 소화시키지 못하고 뱉어내기 일쑤다.

얼마 전 ‘수염도마뱀’ 두마리가 갑자기 동시에 죽어버렸다. 부검해 보니 거의 소화시키지 못한 쥐가 3마리나 고스란히 위 속에 남아 있고 소장의 일부가 좁혀져 있는 걸로 보아, 전형적인 식체 증상이었다. 아마 신경이 살아 있었다면 무척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조사를 해보니 담당 사육사가 어떤 문헌을 보고 작은 쥐도 먹는다 하여, 그동안 곤충류나 야채만 먹이다가 색다른 먹이를 함께 넣어 준 모양이다. 예상한 대로 먹기는 먹었지만 자연 상태의 습성을 인공사육에 그대로 적용한다는 게 어려운 일임을 새삼 깨닫게 했다.

이런 걸 보면 사람도 비움과 가려 먹는 삶에 더 신경을 써야 할 것 같다. 앞으로 환경이 불편하면 우리 모두 동물처럼 단식이라도 해서 보여주어야 하는 건 아닐까? 그런데 누가 누구한테 보여주어야 한단 말인가.

최종욱/수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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