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3.20 16:38
수정 : 2005.03.20 16:38
학생시절 공통으로 겪는 스트레스는 시험과 폭력일 가능성이 많다. 대부분 시험이라는 괴물의 도전에 응전하면서 젊음의 고비고비를 견뎌야 했다. 공부를 잘 하든, 못 하든 곧이어 닥치는 시험은 얼마나 큰 형벌이었던가. 시험으로부터 도피할 수도 있었지만, ‘대열에서의 탈락’이라는 존재론적 상처를 감내해야 했다. 예나 지금이나 확, ‘시험의 노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오죽하면 성인이 된 뒤에도 꿈 속의 학교에서 이 괴물과 만나는 사람이 있을까. 또다른 스트레스는 폭력이다. 누구나 한번쯤은 무기력한 상태에서 폭력 앞에 노출된 경험이 있을 것이다. 개인의 자유와 선택이 깡그리 무시되는 자기 모멸과 참담함, 그순간 학교는 ‘계엄령의 사회’였다.
오늘, 학교는 어떤가. 시험의 중압감은 여전하고 육체에의 폭력도 계속되고 있다. 시험으로 서열을 매기는데서 오는 수직계열화한 정서적 폭력은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영혼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내고 있다. 요즘 학생들은 어떤가. 대개 어느 한 분야에 자신의 마니아적 열정을 쏟을 수 있는 수업과 공부를 하는 학교가 소망이라고 한다. 그런데, 학교와 가정과 교육행정기관은 이들의 욕구를 아예 모르거나 알면서도 뒷받침 해주지 않는다. 학생들은 자신이 개성적으로 추구하는 게 존중받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당국과 학교와 교장은 집단과 통제가 자신의 존재이유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어린이와 청소년들은 지금도 “시험 없고, 폭력없는 세상”을 달라며 비명을 지르고 있는 셈이다. 이는 수행평가의 도입이나 특기적성 교육의 확대와 같은 정책적 변화도 있으나, 아직 시험성적으로 학생들을 평가하고 줄을 세우는 데서 탈피를 못하는 교육현실을 반영하는 생생한 증언이다.
그런데, 얼마전 서울시교육위원회가 이런 교육현실에 기름을 붓는 정책을 내 놔 비판자들의 표적이 되고 있다. 서울시교위의 ‘서울학생 학력신장 방안’ 가운데 일제고사 부활과 초등학교 성적통지 방법 개선 항목이 전교조 등의 반발을 사고 있는 것이다. 서울시교위는 어린이들의 학력이 예전보다 떨어지고 있다는 판단을 근거로 일제고사 부활 정책을 내논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시험 성적에 따라 ‘매우 잘함’ ‘잘 함’ ‘보통’ ‘못 함’ ‘매우 못함’으로 나눠 기록을 남기겠다고 한다. 하지만 이 정책은 곧바로 시험결과에 따른 어린이들의 서열화를 낳을 수밖에 없다. 학교간, 학급간, 교사간의 불필요한 경쟁도 살아 날 것으로 보인다. 노는 공부를 해야 될 코흘리게들이 보습학원과 과외공부에 더 열중해야 하고, 학부모의 사교육비 부담은 늘어날 게 뻔하다.
시교위가 학력저하의 근거로 제시한 일부 신문의 학력성취도 보도내용도, 자료를 자의적으로 해석한 결과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더욱이 최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분석한 피사(PISA)의 2003년 결과를 보면, 초등학교 4학년때부터 일제고사 대신 특기적성교육과 수행평가 중심의 수업을 받은 학생들이 빼어난 학력을 갖고 있음을 입증했다. 피사 시험 당시 고2 학생들의 학력수준이 문제해결력에서 세계 1위, 읽기 2위, 수학 3위, 과학 4위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는 오이시디 국가 가운데서도 최상위권이다. 시험 결과가 이렇게 나오자, 한국보다 뒤떨어진 독일, 영국을 비롯한 유럽 국가들과 미국, 일본에서 자국의 교육정책에 대해 대대적인 점검을 하는 등 한바탕 소동이 일기도 했다.
21세기 교육의 특성은 관용과 배려를 중시하는 창조적 개인의 육성에 목적을 둬야 한다. 이는 어린이가 갖고 있는 잠재력의 개발을 돕는 특기, 적성교육 강화와 인성을 강조해온 기존의 서울시교육위의 정책과 부합하는 것이기도 하다. 어린이들에겐 읽기나 셈하기와 같은 지식가치보다, 만지고, 뒤집어 보고, 갖고 놀아 보는 공부를 통해 ‘관계와 소통’의 가치를 배우면서 스스로의 창조적 특장을 키워 나갈 수 있게 해야한다.
서울시교위의 일제고사 부활은 곧 모든 초등학교에 경쟁의 부활을 예고하는 것이다. 또 3월의 신학기가 시작되면서 다른 지방자치단체에 도미노 현상마저 불러 일으키고 있다. 서울시는 일제고사에 의한 단순지식 평가에서 벗어나 어린이 개개인의 특성과 개성을 충분히 알아내 특기계발과 진로지도를 할 수 있는 기존의 서술형 평가로 환원하기를 촉구한다.
고광헌 부국장
kkk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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