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3.28 20:50
수정 : 2005.03.28 20:50
최근 들어 기초과학 분야에서도 선택과 집중이라는 명제 아래 대형연구 위주로 연구비 지원이 집중되면서 우리나라 기초과학 연구의 다수를 점하는 개별이나 소그룹 연구자들이 연구비를 지원받는 일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그야말로 도처에서 소리없는 비명이 흘러넘치고 있다. 불과 3~4년 전까지 이들 연구비의 대다수를 지원하는 한국학술진흥재단(학진)이나 한국과학재단(과학재단)의 연구비 지원신청 대비 선정률은 2 대 1(2명 중 1명 선정) 정도 수준을 넘나들었는데, 2년여 전부터는 적게는 5 대 1, 많게는 10 대 1에 이르고 있다. 반면에 현재 연구비 지원을 신청하는 이공계 연구자들의 평균 연구역량은 그때보다 훨씬 더 강화되었다. 국내외 우수 연구기관에서 다년간 박사후 연구를 수행한 연구역량이 우수한 신임교수들이 전국적으로 대폭 늘어났기 때문이다. 이러한 선정률의 하락은 연구역량이 우수한, 많은 기초과학 분야 연구자들이 기본적인 연구 운영비도 지원받지 못하여 꼭 필요한 대학원 학생도 받지 못하고 연구도 중단할 지경에 이르게 하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학생들이 이공계를 기피하여 나라의 장래가 위기라 하는 상황에서, 기존의 이공계를 전공한 사람들, 특히 그 연구능력을 검증받아 이미 교수로 임용된 기초과학 분야의 역량 있는 많은 연구자들이 이러한 천대를 받는 것은 정부에서 이공계 위기 극복 운운하며 내놓는 대책들을 낯간지럽게 하고 있다.
어떻게 이러한 현상이 벌어졌는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현 정부의 정치적인 정책 시행에 기인한 바가 크다. 참여정부는 대통령 공약사업으로 지방대 육성을 위한 ‘누리사업’을 시행하고, 선택과 집중을 내세워 소수의 연구센터나 소수의 개인 연구자들에게 큰 단위의 연구비를 몰아주고 있다. 더하여, 정부의 정책 입안자들은 경쟁이나 하듯 이러한 대단위 연구비 지원 사업들을 새로이 만들고 있다. 문제는 전체적인 연구비 지원 규모가 대폭 늘어나지 않은 상황에서 결국 우리나라 기초과학 연구자의 절대다수를 점하는 개별이나 소그룹 연구자들에게 돌아가던 1억원 이하의 소규모 연구비 지원이 상대적으로 크게 축소되었다는 것이다.
예컨대, 교육부의 누리사업에만 매년 3000억원 정도 지원되며, 이는 이공계부터 인문사회까지 기초학문 분야를 총괄 지원하는 교육부 산하 학진의 전체 연구비 지원 규모를 웃돌고 있다. 대규모 연구비 지원 사업은 이미 손가락으로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다. 과기부의 나노-바이오, 차세대 성장동력, 21세기 프런티어, 국가핵심연구센터, 우수연구센터, 창의적 연구진흥, 핵심연구개발, 지역협력연구센터 등이 많게는 수백억 적게는 10억 규모다. 이미 이들 예산은 개별(소그룹) 연구지원 사업의 7~8배에 이른다. 새로이 대규모 사업을 벌이거나 그 규모를 키워 기존 개별 연구자들의 연구비 지원을 상대적으로 줄인다면, 역량 있는 대다수 개별 연구자들의 싹을 자르는 일이 되는 것이다. 물론 정부로서는 절대적인 연구비 지원 규모가 줄어들지 않았다고 강변할 수 있다. 그러나 역량이 우수한 연구자들이 예전에 비해 2~3배 늘어난 상황에서 소규모 연구 지원예산이 상대적으로 줄어들었다면 당연히 대다수 연구자들은 연구지원 대폭 축소의 된서리를 맞게 되는 것이다. 누리사업은 주로 선정된 분야 학부 학생들의 장학금이나 연수 및 학과의 시설투자에 쓰여, 정작 연구자들의 연구 지원과는 거리가 멀다. 문제는 그 수가 대폭 늘어난 역량 있는 연구자들을 지원하여야 마땅할 예산이 이러한 정책사업들로 옮겨갔다는 것이다. 특히, 기초과학 분야는 중요한 학술적인 업적들이 대형 과제에서 나오는 경우보다 전혀 예상치 않은 분야나 연구자로부터 나오는 경우가 많다. 이는 기초과학의 학문적 성격에 기인하며, 기초과학에 선택과 집중이라는 개념을 적용하는 것 자체부터가 잘못된 것이다. 때문에 연구비를 인위적으로 소수에게 몰아주는 것보다, 기본적 연구역량이 있는 전 분야의 연구자들에게 고루 연구비를 지원하는 것이 오히려 상대적으로 더욱 효과적인 기초과학의 진전을 이룰 수 있다. 정부는 추경을 편성하여서라도 마땅히 개별·소그룹 연구자들의 소규모 연구 지원을 대폭 확대하여 우리나라 기초과학을 살려야 할 것이다.
이창영/세종대학교 물리학과 교수 자연과학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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