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3.30 19:30
수정 : 2005.03.30 19:30
수돗물 불신이 심한 한국에서 최근 수돗물 고급화를 선언한 서울시의 입장은 충분히 이해한다. 상수도 전문가들이 수돗물이 가장 안전한 물이라 해도 믿지 않으면서, 방송에 출연한 유명인사가 과학적 근거없이 어떤 음식이 몸에 좋다고 소개하면 그대로 믿는 것이 현실이다. 서울시의‘수돗물 고급화’계획은 이런 현실 속에 시민의 신뢰를 얻기 위한 필사의 노력일 것이다. 지난해 서울 수돗물이 미국의 수질기준에 적합하다는 국제적인 인정이 있었지만 과연 서울시민이 얼마나 그것을 믿었는지 궁금하다.
이참에 따질건 따져보자. 일부 시민단체는 정수기와 생수 구입에 연간 1조원 이상의 막대한 돈이 소비되는 기이한 사회현상을 직시하지 못한 채 비과학적인 주장으로 일관했던 것은 아닌지 되짚어 봐야 한다. "기분상 안 좋으니 무조건 원수 취수원을 팔당댐 상류로 옮기라"는 주장은 유아적이다. 과학적 사실과 사회간접자본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한 대안제시와 참여가 아쉽다. 멀쩡한 수돗물에 대한 폄하가 억울해서였을까. 서울시는 왕숙천 위로 취수원을 옮길 뿐 아니라 강변여과까지 검토 중이라 한다.
심미적인 불신 요인마저 없애겠다는 서울시의 새로운 상수도 정책은 환영한다. 그러나 또 다른 갑론을박이 예고돼 있다는 점을 간과하지 않기 바란다. 한 예로, 일각에서는 강변 여과가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준다고 주장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여과를 거쳐 나오는 물을 또 한번 정수처리하느니 정수장에서 고도처리해 기술적으로 한번에 완벽히 처리하는 편이 합리적이라 주장한다.
라인강변의 유럽국 대부분은 강변 여과를 활용한다. 그러나 상수도 선진국이 채택한 방식이 무조건 우리에게 맞는 것은 아니다. 한국의 경우, 대부분 화강암 지대여서 투수 계수가 낮아 강변 여과가 적합치 않을 수 있다. 강변 여과는 수량 확보와 향후 발생될 수 있는 문제까지 고려해 추진해야 한다. 강변 여과를 통해 한 지점에서 확보할 수 있는 원수는 적어도 30만-60만톤이 돼야 경제적이다. 강변여과가 한국의 실정에 맞는지 타당성 검토가 우선이다. 중복투자가 되지 않도록 기존 정수처리시설의 활용 방안 역시 치밀하게 따져봐야 한다.
환경부에서는 녹물에 의한 수돗물 불신이 크다고 보고 옥내배관에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 필라델피아와 같은 미국의 오래된 도시에서도 녹물이 나온다. 그래도 필라델피아 시민의 70%는 수도꼭지에서 나온 수돗물을 그대로 마신다. 필라델피아의 수돗물 직접 음용률이 높은 이유는 녹물에 대한 바른 인식 때문이다. 녹물은 미관상 문제이지 건강에는 전혀 지장이 없다. 오히려 철분 부족을 염려해 철분섭취를 권장하고 있지 않은가? 많은 정수기 제조회사에서는 수돗물과 차별화하여 알칼리성 전해수, 6각수 등의 그럴듯한 광고로 사람들을 유혹한다. 이러한 물들이 주장한데로 건강에 좋다면 왜 뉴잉글랜드 매디칼 저널이나 사이언스 저널과 같은 곳에 발표되지 않는가? '물은 물이요 산은 산'일 뿐이다. 건강 유지비결은 운동과 절제된 생활이지 특수한 물이 아니다. 수돗물의 고급화 뿐 아니라 시민의 의식도 고급화돼야 할 시점이다.
박재광/미 위스콘신대 건설환경공학과 교수, 현 한국과학기술원(KAIST) 방문교수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