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5.04.03 17:54 수정 : 2005.04.03 17:54

주인이 따로 없는 공동 방목장이 있다고 하자. 농부들은 점점 더 많은 소를 끌고 나오는 게 이득이다. 더 많은 풀이 돋아나도록 기다리다가는 다른 농부에게 풀을 빼앗길 터이다. 결국 지나친 방목으로 방목장은 황폐화된다. 생물학자 가렛 하딘이 1968년 <사이언스>에 발표한 유명한 ‘공유지의 비극’이라는 개념이다.

자연은 모든 이의 것이지만 어느 누구의 것도 아니다. 먼저 쓰는 사람이 임자라는 생각에서 인류가 자연 자원을 앞다퉈 이용한 성적표가 바로 최근 유엔이 발표한 방대한 <밀레니엄 생태계 평가> 보고서다. 그 내용은 지구라는 공유지의 목초 가운데 60%는 벌써 사라졌고, 이대로라면 누구도 뜯을 풀이 없는 황무지가 될 것이라는 경고다.

이 보고서를 작성한 방식이 눈에 띤다. 지난 4년 동안 95개국 1360명의 전문가들의 분석을 익명의 동료 과학자 검토를 거쳐 2500여쪽의 방대한 보고서로 묶었다. 88년 유엔의 기후변화 정부위원회(IPCC)의 기후변화 보고서도 이런 식으로 만들었다. 아직 원인과 영향, 대응 면에서 불확실한 점이 많지만 더는 대책을 늦출 수 없기에 세계적으로 정보와 통찰력을 동원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밀레니엄 보고서’는 앞으로 지구 차원의 자연 자원과 생태계 문제를 논의하는 기본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 보고서는 대표적인 자연 자원 남용 사례로 대서양 대구 어장의 붕괴를 들었다. 캐나다 동쪽 뉴펀들랜드 해역은 16세기부터 세계 최대의 대구 어장이었다. 전통적인 연근해 대구어업에 더해 50년대 말 ‘물에 뜬 공장’인 대형 저인망이 확산되면서 어획량이 급증했다. 하딘이 ‘공유지의 비극’을 발표한 해 대서양 대구 어획고는 사상 최대인 80만t을 기록했다. 70년대 말 캐나다 정부는 자원 고갈을 막기 위해 어획량을 제한하는 정책을 펴기 시작했다. 그러나 과학에 기초한 조심스런 관리의 성공사례로 꼽히던 이 정책은 90년대 들어 파탄을 맞는다. 어획량이 곤두박질치고 자원량 평가에 문제가 있었음이 드러나자 캐나다 정부는 92년 고기잡이를 전면적으로 금지시켰다. 3만명이 졸지에 일자리를 잃는 캐나다 사상 최대의 실업사태가 일어났다. 그 후 10여년이 지났지만 대구 어장은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2003년 어장은 무기한 폐쇄됐다.

주목할 것은 대형 선단 중심의 대구 어업이 한창 잘나가던 80년대 초부터 연근해 어민들은 심상찮은 조짐을 발견했다는 사실이다. 어민들은 점점 어린 대구가 많이 잡히는 문제를 지적했지만 아무도 귀담아 듣지 않았다. 반면, 정교한 장비와 컴퓨터 모델을 동원한 과학자들은 낙관적인 예측을 통해 수산 당국과 정치가들을 만족시켰다. 나중에 밝혀진 사실이지만 번식을 할 성숙한 대구의 감소는 자원 붕괴의 핵심 원인이었다. 과학은 해결책이 아니라 오히려 문제였던 것이다.

‘밀레니엄 보고서’는 생태계를 오래 보전하도록 관리하는 대안의 하나로 과학 못지않게 특정한 장소에 기반을 둔 지식을 활용하라고 제안하고 있다. “지역 자원 관리자가 갖고 있는 전통적 지혜나 현장 지식은 과학과 동등한 또는 더 나은 가치를 지닌다”는 것이다. 생태계에 대해 과학은 아직 모르는 것이 많다. 비록 깔끔한 과학의 형태는 아니라도 지역주민이 오랜 세월 자연과 접하면서 얻은 통찰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자연을 관리하는 오랜 지혜는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다. 이미 수백년 전부터 어촌에서는 개펄을 이런 방식으로 관리해 왔다. 또 최근 전국에서 확산되고 있는 ‘자율관리 어업’도 마찬가지다. 그렇지만 아직도 대형 국책사업에서 지역주민의 지혜와 의견은 묵살되고 있다. 새만금을 ‘환경 친화적’으로 개발한다면서 그곳에서 수백년 동안 그렇게 살아온 사람들은 그저 어업권 보상의 대상일 뿐이다. 방사성 폐기물 처분장 터를 구한다면서 주민들이 자기 지역을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개발하도록 논의의 장을 열어주려는 노력은 하지 않고 뭉칫돈으로 여론을 사려고 한다. 지역주민의 참여 없이 환경은 살아나지 않는다.

조홍섭 부국장 ecothink@hani.co.kr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