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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4.05 21:41 수정 : 2005.04.05 21:41

얼마 전 <한겨레>에 어떤 아버지가 군대 간 아들을 그리며 쓴 글을 읽고 요즘 군대는 초등학생도 가나하고 의아해 했드랬다. 글은 시종일관 ‘우리 아이’를 처음 군대를 보내면서 부모가 얼마나 마음을 조렸는지를 얘기했는데 행군하다 발바닥에 굳은 살 박힌 ‘아이’가 안쓰러워서 가슴이 미어지고 그림을 그리다 입대한 ‘아이’의 손이 거칠어져서 너무 속이 상했고 ‘어린이날’에는 부대에서 그 ‘아이’가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하니까 부부가 또 함께 직접 화구를 들고 부대를 찾았다는 얘기, 어둠이 짙어진 부대 안에 ‘아이’를 혼자 두고 오는 내내 차 속에서 부부는 숨을 죽이고 슬픔을 삼켰다는 얘기를 했다.

우리 사회의 진풍경 중 하나가 대학입시 설명회장 모습이다. 대학생이 되기 위해선 어떤 준비가 필요하고 시험 준비는 어떻게 해야하며 그 학교가 요구하는 학생은 어떤 학생이라는 얘길 해주는 자리에 반 이상이 부모들이 앉아있다. 심지어는 회사 입사식 날에도 부모가 쫓아가서 흐뭇한 얼굴을 하고 지켜본다는 거다. 결혼은 어떤가. 아직도 텔레비전 드라마의 단골메뉴는 부모가 자식의 배우자 선택을 두고 ‘내 눈에 흙이 들어갈 때까진 결사반대’하는 바람에 스토리는 이어져간다. 자녀가 결혼을 한 후에도 자녀의 삶을 자기 것인 줄 아는 우리 부모들의 간섭은 줄어들지 않는다. 아이를 가질 시기와 자식 수까지 집요하게 간섭한다. 마마보이 파파걸의 나라가 아닐 수 없다.

우리 사회도 우리 사회의 구성원이자 선거권까지 있는 젊은이들을 ‘아이취급’하긴 마찬가지다. 대학교가 ‘아이들’에게 공부를 많이 시키네 적게 시키네 분분하기도 하고 자취하는 ‘아이들’ 성생활이 문란해서 큰일이라 걱정한다. 대학생씩이나 된 그들은 공부도 성생활도 스스로 알아서 할 수 있는 나이들이고 또 그래야만 한다. 요즘 뒷바라지는 마흔까지 해야한다는 얘기가 있다. 공부들을 하도 오래하고 많이 하니까 어쩔 수 없이 생겨난 상황이다. 그래도 경제적 독립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면 스무 살 언저리쯤에선 정신적인 독립이라도 해야하는 거 아닌가.

그런데 더 아이러니한 것은 정작 이십대 ‘아이들’보다 더 어린 십대들에겐 왜 어른의 잣대를 대는지 이해할 수 없다. 바로 학교 폭력에 대한 정책이다. 그 아이들이야말로 진짜 아직은 ‘아이들’인데 완전히 성인 조폭을 대하듯 하고 한 대 때린 아이를 세 대 때려서 찍소리 못하게 하는 수법을 쓰겠다는 거다. 정부에서 내놓은 정책과 각 학교들의 대응책들을 보면 때린 아이들의 찢겨진 영혼에 대해 ‘어른’과 ‘선생님’으로서 반성하는 모습은 보기 힘들고 정작 아직은 진짜 ‘아이들’을 무슨 성인 전과자들을 다루듯 하는 걸 보면서 뭔가 거꾸로 된 게 아닌가 싶어 안타깝기 그지없다.

듣기만 해도 무시무시한 학교경찰제를 확대하겠다는 둥, 때리는 제자를 ‘신고’하면 선생님들이 모인 학교에 인텐시브를 주겠다는 둥, 도대체가 ‘교육’은 부재하고 폭력으로 폭력을 잠재우겠다는 군부정치시대 때나 어울릴 얘기들만 들린다. ‘일진회’만 ‘잡아 족치’면 학교 안의 폭력이 없어질 거라는 순진한 발상부터 말이 안되지만 도대체 왜 때리는지 무엇이 그 아이들을 그렇게 황폐하게 했는지 눈물을 흘리며 가슴으로 아이들을 안아보려 하는 의지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내가 아는 어떤 대안학교에서는 교내 폭력이 거의 일어나지 않지만 일년에 한 번 정도 어쩌다 아이들끼리 폭력을 휘두르는 일이 생기면 교장선생이 학교 한 쪽에 교사와 아이들이 함께 지어놓은 정자에 앉아 금식기도를 하며 ‘아이’들을 제대로 인도하지 못한 자신을 책망한다고 한다.

물론 그런 모습은 어디까지나 ‘대안’이므로 그게 꼭 정답이라고는 말할 수 없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학교는 최소한 아이들을 ‘아이대접’을 해줬기 때문에 그런 반성이 있을 수 있는 것이고 아이들 또한 스스로 깨달을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십대는 우리 ‘아이’를 감싸듯이 이해해주고 이십대는 ‘어른’으로 인정해 주자. 제발.

오지혜/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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