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투기적 요소가 없는 투자가 있을 수 있으며, 투자적 요소가 배제된 투기가 있을 수 있을까. 서울사람이 강원도의 땅을 사면 투기이고 강원도 사람이 서울에 아파트를 사면 투자인가? 정부는 아파트 미분양물량이 적체되어 갈즈음 미분양 해소책으로 임대사업을 권장하였다. 그러나 3주택이상 보유자에게는 양도세를 또 실거래가로 과세한다. 다주택 보유는 투기인가 투자인가? 혹시 ‘내가하면 투자이고 남이 하면 투기’ 아닌가.
최근 정부의 고위관리 3명이 모두 부동산 투기혐의로 사직하였다. 그분들의 직위·직책은 부동산관련 정책의 정점에 있었거나 혹은 투기를 근절하여 부의 공평과 기회의 균등을 통하여 국민의 인권을 최대한 보장해야하는 기관의 최고 수장들이었다. 투기와 투자를 누구보다 명확히 구분해야하는 공직자들이 어찌 한결같이 구분하지 못했을까. 다들 본인은 투자이지 투기는 아니라고 하고 국민들은 투기라 하고 ….
정책수립의 정점에 있는 분들의 도덕적 의무감을 강조하는 이유는 그들이 투기하기 시작하면 우리 사회의 미래는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부동산 개발정보를 생산하고 독점하는 정책가가 투자(투기)하면 일반인은 그 뒤에서 줄을 선다.
재산세 납세 실적을 기준으로 부동산 소유의 편중현상을 연구한 일전 한 대학교수의 논문을 참조하면 우리사회의 부동산 과다보유자 1%는 전국 토지의 40%를 소유하고 있으며, 부동산 가격이 5%만 상승하여도 그 시세차익은 수십조원에 이른다고 하였다. 부의 편중현상이 심화되면 사회는 불안정하게 된다. 현재 우리사회는 신용불량자와 생활보호대상자가 증가하고 부자들의 재산도 증가하여 사회의 양극화가 더욱 심화되고 있다. ‘권력의 양극화’는 근대사회에 ‘시민혁명’을 가져왔고, ‘부의 양극화’는 ‘사회주의 혁명’을 가져왔다.
‘투기와 투자’가 시각의 차이, 해석상의 차이일 뿐이며 오히려 부동산정책의 정당성과 합리성을 가장하기 위한 명목적인 개념으로 사용되고, 투기꾼은 ‘공공의 적’이라는 유도된 사회적 동의 뒤에서 정책수립가들은 그들만의 투자(?)세상을 만들어 가고 있다면 왜 우리 서민들만 투자와 투기를 구분해야 하는가?
부동산실거래가 제도는 속히 도입·정착되어야 한다. 그리고 양도소득세와 증여·상속세는 강화되어야한다. 미국의 경우 우리보다는 증여·상속세의 세율이 높고 기부행위도 일반화되어 있다. 부의 세습을 차단하는 제도가 정비되어 있다면 투기든 투자든 무슨 상관이랴.
‘고위공직자의 투자(기)’와 ‘떴다방의 부동산 전매행위’는 그 의도하는 바가 전혀 다르지 않다. 수도권이나 혹은 지방 대도시, 중소도시까지도 최근 지가의 급상승이 가져다 준 ‘자다가 왼 떡’ 식의 자본적 이득에 흐뭇해하는 이들이 참으로 많고 이를 보면서 안타까워하는 이들은 더욱 많다. 언제까지 이러한 연극이 계속되어야 하는가? 언제까지 투자와 투기를 구별한다고 야단법석들 할 것인가. 그 실익 없는 논쟁 ‘뫼비우스의 띠’를 쳐다보며 ….
김용희/ 서울 사이버대 부동산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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