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패밀리사이트

  • 한겨레21
  • 씨네21
  • 이코노미인사이트
회원가입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5.04.11 20:09 수정 : 2005.04.11 20:09

논과 밭, 집과 세간, 고향을 빼앗겼던 한 많은 50년. 불도저로 부모 묘를 파헤치는 꼴을 본 노인들의 50년. 묵은 원한을 가슴에 품고 살아왔다. 일본군, 미군, 또 다시 미군. 세 번째 쫓겨날 판이다. 생각하면 온몸에 전율이 온다.

미군기지 확장 예정지역인 경기도 평택시 팽성읍 대추리 노인들을 마주하면 참으로 안타깝다. 토지수용 절차인 지장물 검사를 3주간에 걸쳐 막아내고 한 고비를 넘긴 터에 국방부의 등기 우편물이 배달된다. 우편물을 거부하고 문패도 떼내버렸다. “국방부, 한국토지공사, 대한주책공사, 한국감정원의 우편물은 받지 않습니다”라고 글귀를 써서 패 대신 붙여놓는다. 수취를 거부하기 위함이다. “일단 만나자! 대화로 풀자!”라고 제의해 온다. “한마디 의논도 없이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자들, 대화라는 말을 더럽히고 있다.” “저들은 돈만 주면 되는 줄 알지만 난 여기를 떠나서는 살 수 없다.” 노인들은 거침없이 내뱉는다.

노인 혼자 계신 집에 찾아가 “할머니는 이의신청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모르시는 것 같아요” 하고 마음에 불을 붙인다. 하지만 할머니는 알 것 다 알고 계신다. 무례한 전화가 걸려온다. 부대 근처만 지나가도 분노가 치미는 판에 화가 극에 달한다. “감정평가에 대한 이의신청을 빨리 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당할 것입니다.” 뜻밖에 나타난 한 젊은 사람이 하는 말이다. “그런 소리 하려거든 나가버려!” 호통을 치고 내보낸다. 그 젊은 사람, 정부로부터 돈 받고 왔다 치부해버리고 불쌍하게 여긴다.

‘이주민 대책 위원회’가 생겼다는 소리가 들린다. 취업 및 대체용지를 알선한다는 취지다. 젊은이들도 나가떨어지는 판에 늙고 병든 노인들에게 취업을 알선한다? 살 곳을 준다는 것이 아니다. 가뜩이나 투기바람에 치솟은 땅을 홀대받는 농지값으로 산다는 것도 불가능하다. 죽으라는 얘기다.

지장물 조사 저지하느라 일을 못했다. 못다한 일을 끝내려 하니 일손이 부족하다. 비까지 내려 더 미루어졌다. 저 광활한 땅이 다 미군기지가 된다 하니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이를 아는 듯 모르는 듯 냉이며 쑥, 각종 나물이 쑥쑥 올라온다. 소리없이 움이 터 꽃봉오리를 맺는다. 모판 몇 장을 들어옮기며 “이렇게 농사짓고 살면 얼마나 좋을까. 그 놈의 미국 놈들 때문에 마음이 불안하다. 내 땅 내가 안 내놓겠다는데 어쩔 것이냐.” 이런 배짱이지만 마음은 불안하다. 그러면서 논밭농사를 준비한다. 일을 하면서도 내년에도 농사를 지을 수 있을지 걱정이 꼬리를 문다.

일과 싸워가며, 쌓인 앙금을 가라앉히려는 분들이 대추리 노인들이다. 비록 칠팔십대 고령이지만 노익장으로 지장물 검사를 막아낸 전사들이었다. 그런데 멀쩡한 분들이 두 주에 한 뿐씩 세상을 떠나고 있다. 심병근 할아버지가 4월 2일 세상을 떠나셨다. 이주원 할아버지가 4월 3일 세상을 떠나셨다. 이분들에 앞서 방승률 할머니가 지장물 검사 저지 끝날을 넘긴 다음 날 가셨고 올 들어 모두 일곱 분이 가셨다. 보름에 한 분씩 돌아가셨다. 이토록 노인들이 이어서 돌아가신 일은 예년에 없었다. 빼앗긴다 생각하니 속이 썩고 불안하고 초조한 나날이었다. 땅을 늘린다든지 자식들을 결혼시킨다든지 집집마다 계획이 있다. 이 계획을 위하여 가진 땅 모두가 근저당이 잡혀 있다. 수년에 걸친 갚을 계획을 세워 놓고 열심히 일한다. 농기계들을 사들였다. 모두가 빚이다. 지금 수용되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이것이 문제다.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신 노인들의 걱정을 헤아릴 수 있다.

“이 좋은 땅에 미군기지라니. 죄를 지으려 환장했나? 이렇게 노인들을 죽어가게 하는 주범은 정부다. 정부는 살인자다.” 문상 온 사람들의 규정이다. 편안한 마음으로 살아도 힘든 건강에 속을 끓이고 사니 돌아가실 수밖에 없다고 산 자들은 말한다. 옆 동네 신대리에서도 노인들이 이런 충격으로 이어서 쓰러지고 있다.

50년 동안 일구어논 논밭을 또 빼앗긴다니 기가 찬다. 제일 좋은 쌀이 나오는 농토를 빼앗긴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농민이 농토를 떠난다는 것은 바로 죽음이다. 땅을 빼앗고자 하는 정부는 이곳 농민들을 사지로 몰아넣고 있다.


그렇다. 대부분의 마을 사람들의 길이 옳은 길이다. 마을 사람을 모독할 수 없다. 죽으나 사나 함께 가야 한다. “우리가 원치 않는 일을 강제로 밀고나가는 정부가 나쁘다. 우리를 다 죽인다 해도 우리 땅을 미군기지로 내줄 수는 없다. 우리의 마음이 변치 않는 한, 촛불이 꺼지지 않는 한 내 땅을 빼앗을 수는 없을 것이다.” 이렇게 다짐하며 죽어가고 있다.

문정현 신부/유랑단 평화바람 단장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많이 본 기사

전체

정치

사회

경제

지난주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