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4.12 18:59
수정 : 2005.04.12 18:59
프랑스 포경선 리앙쿠르호가 독도에 닿았던 1849년, 독도는 15세기 중반 이후 울릉도 및 독도에 대하여 실시되어온 공도(空島) 정책 때문에 비어 있었다. 그리고 푸른 눈의 이방인들은 마치 신대륙을 발견한 듯 의기양양해하며 이름모를 섬에 자랑스럽게 새 이름을 지어주었다. ‘리앙쿠르 암초(Liancourt Rocks).’ 세계에 가장 먼저 알려진 독도의 이름이다. 어쩌면 독도의 수난은 이때부터 시작되었을지 모른다.
물론 한국인들은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말을 전혀 의심치 않는다. 특히 한국 정부는 더욱 그렇다. 그러면서 독도가 한국 영토임을 입증할 만한 사료도 충분하고 현재 실효적 지배를 하고 있으므로 불필요한 대응으로 오히려 독도를 ‘분쟁지역화’할 소지를 주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한다. 이 말 그대로 한국 정부는 그저 ‘조용한 외교’로 일관했다. 그러나 아무리 독도 관련 사료가 충분해도 지금 세계인들의 눈에는 ‘동해에 떠 있는 독도’보다는 ‘일본해에 떠 있는 다케시마’가 더 자연스러워 보일지 모르는 일이다. 기껏해야 경찰이 서른 명 남짓 상주하며 경비하는 실효적 지배는 불안정하기만 하다.
우리의 미온적인 대응을 비웃기라도 하듯 지난 3월 일본 시마네현 의회는 이른바 ‘다케시마의 날’ 조례안을 제정·통과시켰다. 이와 더불어 일본 극우 인사들의 망언이 급격히 늘어났고, 또다시 역사 왜곡 교과서 파문이 일어났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우리 정부는 그제야 황급히 태도를 바꾸어 강경대응을 천명했다. 늦은 감은 있지만 다행한 일이다. 하지만 정책 설정에 앞서 정부는 그동안 보여온 안이한 인식 태도부터 고쳐야 한다. 반크 회원들이 먼저 나서서 ‘독도 지키기’, ‘외국 교과서 오기 정정’에 애를 쓸 때 정부는 마냥 팔짱만 끼고 있었다. 재야 사학자 고 이종학 선생이 왜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독도박물관의 문을 닫으면서까지 극렬하게 항의해야 했는지 우리 정부는 아직도 깨닫지 못한 것 같다.
150여년 전 ‘리앙쿠르 암초’라는 이름이 지어질 때나 지금이나 상황은 매 한가지다. 국가의 무관심 때문에 독도는 수난을 당하고 있다. 다행히 헌신적인 민중들이 있어 독도는 외롭지 않았다. 조선시대엔 안용복이, 해방 직후 혼란기에는 독도 의용수비대가 독도와 함께했다. 최근에는 반크가 사이버상에서 맹렬하게 독도 수호 활동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이젠 국가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특히 독도 관련 정책들을 치밀하게 계획하여 꾸준하게 실행해야 한다. 이번에도 냄비처럼 확 끓어올랐다가 금세 식어버린다면 독도는 정말 ‘외로운 섬’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안준섭/서울시 강동구 둔촌1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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