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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4.12 19:04 수정 : 2005.04.12 19:04

“다케시마는 역사적 사실에 비춰봐도, 또한 국제법상으로도 명백히 우리 나라 고유의 영토이다. 한국의 다케시마 점거는 국제법상 아무런 근거가 없는 불법 점거다.”

성명서를 방불케 할 만큼 도발적인 이 문구가 실려 있는 곳은 놀랍게도 일본의 대외정책을 총괄하는 외무성 홈페이지다. ‘다케시마’는 물론 ‘독도’를 일컫는다. 독도의 시설 현황을 소개하고 있는 ‘참고’ 항목은 아예 제목을 ‘한국의 불법점거 상황’이라고 달아놓았다.

최근 들어 일본의 군국주의 망령 되살리기가 점입가경이다. 지난 2월 시마네현의 ‘다케시마의 날’ 조례 제정에 이어, 이달 들어선 자위대와 일왕의 위상을 강화하는 헌법 개정 작업이 한창이다. 새학기를 맞아 열린 입학식에선 침략자 시절의 국기(히노마루)와 국가(기미가요) 관련 의례가 더 한층 강화됐다. 지난 1일엔 일본 의회가 ‘쇼와의 날’(4월29일)이라는 이름으로 히로히토 왕의 생일을 국경일로 정했다.

이런 ‘받들어 총!’ 행보의 절정은 지난 5일 공개된 새 중학 교과서 검정 결과다. 뚜껑을 열어본 결과 시장점유율이 절반을 훨씬 넘는 3종의 교과서에서 독도를 일본 땅으로 표시했다. 다른 출판사들도 뒤따라 독도 문제를 추가할 태세다. 당장 내년부터 일본 청소년들은 독도를 일본 땅으로 배우며 자랄 판이다.

사실 이웃 나라를 아랑곳않는 일본의 태도는 근대 이후 일본을 관통하는 흐름이다. 그 뿌리는 일본의 대표적 근대사상가로 추앙받는 후쿠자와 유키치다. 지금도 1만엔권 지폐의 초상화로 살아 있는 그는, 120년 전인 1885년 제국주의적 대외 팽창주의의 토대가 된 ‘탈아론’을 들고 나왔다. 요지는 이렇다.

“일본은 아시아의 동쪽에 있지만 국민정신은 아시아의 고루함을 벗었다. 그런데 중국과 조선이 이웃에 있어 불행하다. 중국과 조선은 우리 일본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서양 문명국 눈에는, 세 나라의 영토가 서로 접해 있어 같은 시각으로 일본을 평가한다. 그 영향으로 일본의 외교에 장애가 되는 일이 적지 않다. 그렇다고 이웃 나라의 개명을 기다려 함께 아시아를 번영시킬 여유는 없다. 오히려 그 대오에서 벗어나 서양 문명국과 진퇴를 같이하여, 중국과 조선을 접해야 한다. 이웃 나라라고 해서 사정을 봐줄 수 없다.”

2001년 들어선 고이즈미 정부의 움직임은 마치 이를 교본으로 삼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한편에선 야스쿠니신사 참배 강행, 교과서 왜곡 등으로 철저히 이웃 나라를 무시하고, 다른 한쪽에선 미국을 방패막이 삼아 대외 팽창을 꾀하는 행각이 영락없는 ‘탈아론’의 재판이다. ‘탈아론’ 10년 후 일본은 청-일 전쟁의 승리로 기세를 올렸고, 20년 후엔 을사늑약을 통해 조선 침탈을 본격화했다. 그러나 브레이크 없는 팽창주의는 결국 70년 뒤 패망으로 이어졌다.

〈문명의 충돌〉 저자 새뮤얼 헌팅턴은 20세기 국제정치에서 보여준 일본식 생존법의 특징을 이렇게 요약한다. “일본은 역사적으로 패권국으로 생각되는 쪽과 편을 짜 안전을 지켜왔다. 20세기 초에는 영-일 동맹이, 1930년대엔 독일과의 추축국 형성이, 50년대엔 미-일 동맹이 그 수단이었다.” 그의 분석대로라면 미국의 패권이 지속되는 한 일본은 후원자를 바꾸지 않으려 할 것이다. 미국으로서도 중국 견제를 위해 일본이 필요한 상황이다.

더욱 큰 문제는 지금의 일본에는 이런 움직임에 제동을 걸 수 있는 내부견제 세력이 거의 궤멸됐다는 점이다. 과거 두 차례나 폐기됐던 ‘쇼와의 날’ 제정안이 이번에 쉽사리 통과된 것은 그런 변화를 보여주는 사례다.

그러나 최대 교역국으로 떠오른 중국과, 미국에 이어 세 번째 교역국인 한국과의 갈등은 일본에 갈수록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고민을 던져줄 것이다. 오랜 불황으로 무기력에 빠져 있는 일본에 새 활력은 필요하지만, 후쿠자와식 팽창주의는 아무리 봐도 위험한 외줄타기다. 100년 전에 비해 지금의 동아시아 사정은 그만큼 많이 달라져 있다. 역사의 교훈은 여전히 일본과는 인연이 없는 것인가?

곽노필 국제부장 nop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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