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까지 노무현 정부의 여러 정책이 그랬듯이, 균형자론 역시 납득할 수 있는 문제의식과 방향이 있음에도 내용과 현실성에서는 미흡하다. 균형자론은 아직 진화의 초기 단계에 있다. 김지석 논설위원실장 6s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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균형자론의 진화 |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달 22일 육군 3사관학교 졸업식 연설에서 밝힌 ‘한국의 동북아 균형자 역할론’을 두고 논란이 한창이다. 정부·여당 쪽에서는 ‘동북아의 평화와 공동 번영을 위한 전략적 선택’ ‘실질적인 자주외교의 첫걸음’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야당과 비판자들은 ‘국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허장성세’ ‘외교적 고립을 자초하는 순진한 발상’이라고 몰아붙인다. 언뜻 보면 이상주의 대 현실주의, 진보 대 보수의 대립 구도인 듯하지만 상황이 그렇게 단순하지는 않다.
‘균형자’는 지금까지 우리의 대외정책에서는 없었던 개념이다. 영어로는 통상 스테이빌라이저(stabilizer)로 번역된다. 이 말은 원래 비행기가 잘 날도록 균형을 잡아주는 꼬리날개, 자전거가 넘어지지 않도록 하는 보조바퀴, 음식이나 화학물질의 변질을 막는 안정제 등을 뜻한다. 정부가 내세우는 의미도 이와 상통한다.
균형자라는 말을 즐겨 쓴 사람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다. 그는 주한미군이 남북통일 이후에도 ‘지역적 균형자’ 구실을 할 것이라고 믿었다. 2000년 남북 정상회담 때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에게 비숫한 얘기를 꺼내 묵시적인 동의를 받았다고 한다.
균형자의 주체가 주한미군에서 한국으로 바뀐 데는 최소한 두 가지의 큰 상황 변화가 작용한다. 첫째는 주한미군의 역할 재설정이다. 미국이 추진하는 재외주둔 미군 재배치계획(GPR)은 이제까지 대북 억지력 유지를 위해 존재한 주한미군의 임무를 동북아 기동군으로 넓히려 한다. 만약의 경우, 주한미군 기지를 사용해 중국에 대한 작전을 벌일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구도에서는 주한미군이 균형자 성격을 잃는 것은 물론이고 우리나라까지 원하지 않는 분쟁에 끌려들어갈 수 있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둘째는 미-일 동맹의 강화와 그 속에서 이뤄지는 일본의 급격한 우경화다. 두 나라는 지난 2월 외교·국방 장관 회담에서 ‘공통 전략목표’를 발표했다. 그 속에는 동맹이 관할하는 범위를 사실상 세계로 넓히는 것을 포함해 특히 중국을 겨냥한 내용이 여럿 들어 있다. ‘미사일 방어체제 협력 강화’와 ‘대만해협 문제의 평화 해결 추구’ 등이 그것이다. 일본은 이런 ‘미-일 일체화’를 보호막으로 삼아 재무장과 평화헌법 개정에 속도를 낸다. 교과서 역사왜곡이 심해지고 정치인들의 망언이 잦아지는 것도 같은 맥락에 있다. 이런 부정적인 측면을 중화하기 위해 한국은 미-일 동맹과 거리를 두고 독자적인 위상을 찾아야 한다. 그것이 바로 균형자다.
여기까지는 좋다. 바뀐 현실에 대응해 새로운 방식으로 국익을 추구하려는 문제의식과 노력도 긍정적이다. 문제는 이제부터다. 주한미군의 역할 변화와 미-일 동맹의 강화를 주도하는 것은 미국이다. 곧, 균형자 구실을 부드럽게 성립시키려면 미국이 우리 쪽에 맞춰 동북아 전략을 바꾸든지, 한-미 동맹의 내용을 조정해야 한다. 주한미군이 할 것으로 상정됐던 균형자 구실을 우리가 맡되, 새 미-일 동맹과 거리를 두면서도 한-미 동맹의 질에서도 변화가 뒤따라야 한다. 그런데 정부 관계자들은 “확고한 한-미 동맹을 토대로 균형자 역할을 수행해나갈 것”이라고 말한다. 이는 논리적 모순이거나 책임 회피다. 게다가 균형자 구실이 북한 핵문제 해결 및 통일 노력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도 잘 설명되지 않고 있다.
꼬리날개가 균형자가 될 수 있는 것은 동력이 커서가 아니라 비행기 전체에 골고루 영향을 줄 수 있는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동북아 평화구조 정착에서 핵심 고리인 우리의 지정학적 위치, 전쟁을 추구해본 적이 없는 역사·도덕적인 정당성, 세계 10위권의 경제력 등이 그런 힘을 부여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경제력(구매력 기준)으로만 보더라도 세계 1~3위를 차지하는 미국·일본·중국이 통일된 한반도가 아닌 지금의 한국을 쉽게 균형자로 인정하리라고 보는 것은 지나친 낙관이다.
이제까지 노무현 정부의 여러 정책이 그랬듯이, 균형자론 역시 납득할 수 있는 문제의식과 방향이 있음에도 내용과 현실성에서는 미흡하다. 균형자론은 아직 진화의 초기 단계에 있다. 김지석 논설위원실장 6sjkim@hani.co.kr
이제까지 노무현 정부의 여러 정책이 그랬듯이, 균형자론 역시 납득할 수 있는 문제의식과 방향이 있음에도 내용과 현실성에서는 미흡하다. 균형자론은 아직 진화의 초기 단계에 있다. 김지석 논설위원실장 6s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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