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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4.14 19:22 수정 : 2005.04.14 19:22

중국의 반일운동의 보도를 보면서 1919년 3·1 운동이 중국의 5·4운동을 촉발한 역사적 사실을 연상했다. 중국 정부도 일본의 유엔 상임이사국 진출을 반대할 분위기 형성을 위해 반일운동을 방조 내지는 조장했다는 관측도 있다. 그러나 적어도 표면적으로 나타난 움직임을 보면 중국 정부는 반일운동의 확산에 억제적인 태도로 시종했다. 반일데모에 관한 보도를 억제하고 반일운동 사이트를 폐쇄하기까지 했다.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문제를 이유로 중일 정상간의 상호 방문을 거부하는 원칙적 강경자세를 견지하면서도, 경제관계는 물론 수뇌 이하 레벨의 정치적 관계는 오히려 강화하는 양면전략도 그 이유의 하나였다. 원칙적 비판과 동시에 다면적인 일본 끌어안기를 시도해 온 것이 중국의 전략이다. 최근 중일간에는 외무차관급의 ‘전략대화’의 상설화에도 합의했다.

한국에서 시작된 대일 비판이 중국 여론을 자극한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중국의 반일운동의 확산이 중국 정부 태도에도 영향을 끼친 것은 한국의 대일 신외교 독트린이 낳은 하나의 성과라고도 할 수 있다. 일본의 역사문제를 국제사회의 외교적 문제로 제기하는데는 일단 성공을 거둔 것으로 평가돼야 한다. 중국으로 불길이 거세게 확산되면서 일본도 당황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중국 시장에 대한 일본 경제의 큰 관심과 의존의 결과임은 말할 것도 없다. 중국의 대일비판이 투석 등 부분적으로 격렬한 양상을 띠고 일본 대사관과 상점등에 약간의 피해를 내기까지 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치권과는 달리 일본 여론의 반발이 아직까지는 그다지 크지 않은 것도 주목된다. 그만큼 일본경제에 있어 중국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알게 모르게 뿌리를 내리고 있다. 일본 정부도 ‘피해 보상’과 ‘항의’를 주장하면서도 ‘사태 수습’과 ‘타결’로 기울고 있다.

이같은 사태 전개가 중국 정부의 입장을 강화한 것은 물론이다. 원칙적 비판을 되풀이하면서도 일본 사회에 대한 외교적 공세를 한층 강화하고 있다. 지난 12일에는 중국대사와 자민당 유력 정치가도 참석한 가운데 중일 우호단체들이 관계회복을 제창하는 큰 모임도 가졌다. 이러한 중국 외교의 행보는 우리의 대일 신외교 독트린의 다음 단계를 구상함에 있어서도 시사하는 바가 많다. 모리 전 총리의 친서 보도 등 한일간에도 관계 회복의 움직임이 보인다. 그러나 대일 신외교 독트린은 단기적인 관계 봉합으로 끝날 일은 아니다. 일본의 과거청산을 통한 한일관계의 재정립이라는 목표는 동북아시아의 새 지역질서 구축이라는 장기적인 비전과도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신외교 독트린의 다음 단계 과제로서는 우선 장기적으로 ‘일본문제’에 대처하기 위한 태세 정비를 들어야 한다. 대일비판이 일시적이고 감정적인 차원에 머무르지 않기 위해서는 일본의 ‘보수 우경화’ 움직임에 대한 통합적이고 체계적인 사실 제공의 지속적인 매체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같은 정보 인프라는 정부보다는 시민사회 조직의 연계에 의해 제공되는 것이 외교적으로는 바람직하다. 총체적인 비판보다는, 정확한 사실과 섬세한 분석에 입각한 지속적인 모니터링과 대상을 명확히 선정한 대응 조처가 이제부터 필요한 작업이다.

둘째로는 이같은 정보 인프라는 한국의 견해를 일본 사회에 꾸준히 전하는 방향성에서도 필요하다. 들을 귀를 갖지 않는 일본에 한국의 주장을 전달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태도와 현실을 일본 사회에 알리는 대중여론 외교(public diplomacy)는 여전히 중요하지만 아직도 부족하다.

셋째로 정부 차원에서는 원칙적 문제제기를 유지하고, 생각의 차이를 전제하면서도, 동북아시아 지역질서 형성을 염두에 둔 다양한 ‘전략대화’ ‘정치대화’의 틀을 구상해 볼 필요가 있다. 대립의 표면화는 오히려 그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외교의 갈등’과 ‘외교의 공백’ 사이에는 엄청난 거리가 있다.

이종원/ 일본 릿쿄대 교수·국제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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