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4.14 19:24
수정 : 2005.04.14 19:24
농림부에서 만든 웃기는 이름 중에 ‘친환경 농업’, ‘친환경 농산물’이라는 게 있다. 이른바 농약이나 화학비료 등을 안치거나 규정보다 절반이하로 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럼 규정대로 치면 ‘반환경 농업’인가? 말 그대로 해석하자면 그렇다. 웃기는 작명이라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우리나라의 대부분의 농가는 반환경 농가(?)이다. 불과 2%도 안되는 농민들이 소위 ‘친환경 농업’을 하고 있다. 그런데 친환경이냐, 아니냐의 기준도 기계적이다. 농약을 안치고 화학비료를 안쓰면 규정상 친환경이라고 하기 때문이다.
그 ‘친환경 농업’이라는 농업으로 생산하는 대부분의 농산물은 농사용 비닐집에서 키운다. 비닐은 생산과정도 반환경적이지만 쓰고 나서 폐기하는 것도 반환경적이고 재활용도 그리 썩 환경적이지 않다. 유통과정에서도 정부기관이나 정부가 위탁한 인증기관에서 ‘친환경 농산물’이라고 인쇄한 인증마크를 반드시 붙여야 하는데 농산물 표면에는 접착이 잘 안되므로 포장재를 쓸 수 밖에 없다. 그 포장재는 거의 대부분 비닐이나 플래스틱이다.
생활협동조합의 활동 내용 중에 중요한 부분이 소위 ‘친환경 농산물’을 생산자에게서 소비자에게로 전달해 주는 구실이다. 그런데 그 과정이 별로 친환경적이지 못하다. 지금은 ‘친환경 농산물’인지 아닌지를 ‘친환경 농산물 인증딱지’를 통해서만 증명하게 되어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비닐봉투나 랩 포장을 하고 거기에 인증딱지를 붙일 수 밖에 없다.
70년대 이전에 시장에서 판매되던 진짜 친환경 농산물은 그냥 장바구니에 담기거나 기껏해야 신문지에 둘둘 싸여 거래되었다. 생산과정이나 유통과정이나 찌꺼기 폐기 과정까지 다 말 그대로 친환경적이었다.
요즘 우리 생협 매장에서는 인근의 농가가 생산한 오이를 상자 채 가져와 상자에 인증서와 인증딱지를 붙여놓고 낱개로 판매하고 소비자들은 몇 개씩 장바구니에 담아가고 있다.
우리 생협에서도 이런 실천이 극히 부분적으로 일어나고 있고 대부분의 물품이 ‘친환경’이라는 이름 아래 ‘반환경’적으로 생산, 유통되고 있는 것을 보면 ‘이런 기만이 어디있나’ 싶은 생각에 씁쓸해진다. 이렇게 생산이나 유통, 소비에 이르는 과정이 반환경적일 수 밖에 없는 현실적인 문제도 있겠지만 생산자나 정책 입안자, 관리자, 유통 담당자, 소비자 모두 ‘친환경 농산물(?)’이 반환경적으로 생산, 유통, 소비되는 것을 막고, 줄일 수 있는 방안을 연구해야한다. 그리고 차제에 ‘친환경 농업’이라는 말을 적당한 다른 용어로 바꾸어서 이 땅의 대부분의 선량한 농민들이 ‘반환경 농업’을 짓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재욱/춘천생활협동조합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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