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4.14 19:26
수정 : 2005.04.14 19:26
개헌을 서둘러야 한다. 올 한해만큼은 여야의 약속대로 경제 살리기에 매진해야 한다지만 그 개헌 논의만은 막아서는 안된다. 현행 우리나라 헌법의 대통령 단임제는 다음 다섯 가지 치명적 문제점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첫째, 대통령 임기 5년, 국회의원 임기 4년, 엇갈리는 임기에 따라 선거를 따로 하는 국력 손실이 너무 크다. 국민들은 잦은 과열선거 후유증에 염증을 내고 있다. 세계에서 대통령 임기와 국회의원 임기가 20년 만에 한번 마주칠 만큼 엇갈리는 헌법례는 단 한나라도 없다. 작년 국회의 대통령 탄핵소추건도 그렇다. 정파와 이념, 특정 정치지도자에 대한 지지여부를 떠나 사태발생의 근본원인은 세계 유일의 기형적 통치구조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희한한 제도적 장치를 그대로 놓아두고 임기 2달 남은 국회가 임기 시작한지 1년을 갓 넘긴 대통령을 탄핵하는 사태가 재발하지 않으리라고 그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둘째, 대통령 단임제는 세계 보편적 제도가 아니라 중남미·후진국형 정치제도이다. 단임제를 실시하는 나라치고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 번영을 이루는 나라가 드물다. 2005년 4월 현재 세계에서 대통령 중심제 실시 95개 나라 중에 단임제를 채택하고 있는 나라는 모두 12개뿐. 온두라스 4년, 파나마 5년, 칠레 6년 등 중남미 9개국과 한국 5년, 필리핀과 레바논 6년 등 아시아 3개국이다. 이들 나라의 2003년도 1인당 평균 GDP는 3,000달러 미만으로 매우 낮은 수준이다. 대통령 단임제를 거의 20년이나 실시하여 온 한국의 미래에 중남미·후진국의 어두운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셋째, “장관님, 처음 뵙습니다. 전임 장관님 잘 계십니까. 전전임, 전전전임, 전전전전임 장관님께도 안부 전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는 한중 외무장관회담에서, 중국 외교부장이 한국 외교부장관에게 묻는 안부인사다. 상대편의 입에서 줄줄이 나오는 전임 선배 장관들의 이름 앞에 한국 장관은 회담 시작부터 약간 김이 샌다. 상대편이 한 10년간 외교부장을 맡아 왔는데 한국 장관은 임명된 지 1개월도 채 안되었다.
대통령 자리에 앉으면 이래도 5년, 저래도 5년, 딱 한번 5년, 아무리 길어도 5년이기에 전리품을 많은 사람에게 골고루 나누어 주어야 하기 때문인가. 단임제 실시 이후 국무총리나 장차관등 고위공직자의 임기는 1년 만 넘으면 장수한 편에 들어간다. 그 분야의 최고 전문가라도 취임한지 1년이 지나야 업무를 장악할 수 있는데도 말이다.
넷째, 국정의 연속성이 떨어진다. 단막극도 아니고 토막극이다. 연극이야 토막극이 있을 수 있겠지만 국정이 토막극이라면 아주 심각한 문제다. 대통령 임기보다 긴 세월이 소요되는 중장기 국가전략사업계획수립과 그 실천에 대한 열정이 시들하다.
끝으로, 5년마다 악순환의 반복이다. 언제나 새 정부 1년, 2년차는 개혁이라는 이름하의 전임 정권과의 단절, 비리색출, 또는 정치보복으로 참신해야할 세월을 다 보내고 그러다가 임기 4년, 5년차에 이르면 레임덕에 빠져 허덕인다. 정말 안정적으로 뭔가 할 수 있는 시간은 임기 3년차인 딱 1년. 우리는 이 착오를 벌써 4번이나 반복하고 있으며 또 반복하려고 하고 있다. 믿기지 않으면, 아니 벌써 잊어버렸다면 지금으로부터 5년 단위로 거슬러 올라가 당시 언론보도를 한번 검색해보라, 악순환의 전례만 있고 그 예외는 없다. 빠르고 올바른 개헌을 촉구한다.
강효백/ 경희대 국제법무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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