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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4.17 19:12 수정 : 2005.04.17 19:12

정혜신 정신과 전문의

우연히 보게 된 한 지역방송의 구인광고는 당혹스러웠다. 개인 의원에서 간호조무사를 모집하는 내용인데 지원자격이 23살 미만이다. 도대체 무슨 이유로 23살 미만의 나이를 공개적으로 요구하는 것일까. 원장님의 독특한 개인적 취향이든 아니면 그 병원에서 요구하는 업무를 원만하게 수행할 수 있는 나이가 23살 미만이라고 판단했든 내부적으로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의사는 나름의 논리에 빠져 공개적으로 드러내지 말아야 할 사적인 욕망이나 감정을 부적절하게 만천하에 까발리는 행위를 한 셈이다.

〈한겨레〉 김은형 기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공개적 마스터베이션’이다. 김 기자는 외국의 어느 영화인 부부가 제작·각본·감독한 자아도취적 영화를 평하면서 ‘일가친척과 이웃을 불러 시사회를 하면 될 가정용 홈비디오 수준의 영화’를 만들어놓고 왜 대중에게 볼 것을 강요하느냐며 ‘마스터베이션은 남몰래 하시라’고 재치있는 충고를 던진다. 비단 그 의사와 영화인 부부만의 특별한 문제일까. 그렇지 않다.

군사평론가를 자처하지만 거의 망발전문가 수준인 듯한 지아무개씨는 ‘종군위안부’ 문제 등 일련의 엽기적 발언으로 그쪽 방면의 대표주자를 자임한다. 그의 주장들은 특정 사안에 대한 관심 그 자체보다 자신의 어떤 사적인 욕망을 채우기 위한 행위로까지 보인다. 현란한 ‘공개적 마스터베이션’인 셈이다. 한 개인의 사적인 욕망이나 감정의 배설물에 대책 없이 노출되어 있는 다중의 심정은 불쾌하고도 착잡하다.

국가인권위가 정부의 비정규직 법안에 대해 미흡하다는 의견표명을 했더니 김대환 노동부 장관이 원색적으로 인권위를 비난했다. 정부내 다른 기관에 대한 공적인 이견표명이라기보다 지극히 개인적이고 감정적인 대응에 가까워 보인다. 그런 점에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불편하고 착잡하긴 마찬가지다. 주무부서 장관으로서 인권위를 향해 ‘균형을 잃은 정치적 행위’라는 식의 불만을 표시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또 김 장관의 생각처럼 인권위가 오버를 했거나 적절하지 못한 시점에 문제제기를 했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도 정부 한 부처의 수장이 국가인권위의 의견에 대해 ‘단세포적인 기준’이라거나 ‘잘 모르면 용감해진다’는 따위의 감정적 표현을 남발하는 건 부적절하다. 더구나 “(인권위의 의견은) 노동시장 선진화로 가는 과정에서 나온 돌부리라고 생각한다. 돌부리는 파내는 것이 예방 차원에서 필요하겠지만 지금은 바쁘니까 그냥 가겠다”는 안하무인식 언사는 아무도 없을 때 혼잣말로 내뱉어야 하는 마스터베이션 수준의 발언이다. 인권위를 겨냥한 김 장관 자신의 지적처럼 “용감하게 공개적으로 의견을 제시”할 말이 아니다.

자신의 개별적 욕구나 감정에만 몰입해 있다 보면 내 말이나 행동이 타인에게 ‘공개적 마스터베이션’으로 보일 수 있다는 사실을 깜빡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영화 〈달콤한 인생〉에서 중년의 조폭 두목은 어린 애인의 감정과는 상관없이 자기 식대로 사랑을 표현하고 또 상대도 그에 걸맞게 화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소설가 김별아는 그런 마스터베이션식 사랑을 자신의 소설 한 대목에서 이렇게 표현한다. “그녀의 사랑이 없다 해도 자신의 사랑은 있다. 흔들릴 수 없는 바윗돌처럼 분명코 한결같은 자리에 머무르고 있다. 남자는 여자를 믿는 대신 자기 자신을 믿고자 했다.”

막강한 힘을 가진 사람들의 뇌에서 때로 작동되는 자아도취-마스터베이션식 인간관계의 적나라한 단면이다. 진보적 노동학자에서 노동부 최고 책임자가 된 김 장관도 혹시 그러한 힘의 내부회로에 갇혀 있는 것은 아닐까.

성공한 부모가 자신의 성공으로 인해 오히려 자녀들을 심리적으로 더 어렵게 하듯 잉여의 힘은 관계를 오판하게 하고 왜곡시킬 수 있다. 권력을 가진 이들은 자기의 힘을 부단히 의식하지 않는 한 아차하는 순간에 ‘공개적 마스터베이션’을 하게 되는 낯뜨거운 상황에 직면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혹시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정혜신 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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