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4.18 19:03
수정 : 2005.04.18 19:03
지구가 좁아짐에 따라 세계 대학들끼리 학술 교류도 점점 활발하고 범위도 넓어지고 있다. 유감스러운 건 대학 사이의 학술 교류가 교수와 유학생을 교환하거나 기술 설비를 제공하는 등 얕은 차원에 그치고 있다는 점이다. 대학 총장들 사이의 교류도 잦지만, 서로 명예학위를 주고받거나 비즈니스 계약 체결 따위에만 관심을 둘 뿐이다. 그러나 정작 가장 관심을 가져야 하는 건 대학 ‘경영’이나 대학의 ‘비즈니스’가 아니라 세계의 학문과 사상과 언론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세계의 대학이 어떻게 손을 잡을 것인가 하는 등의 문제가 아닐까?
지난 1년 동안 내가 겪은 일부터 얘기해보자. 지난해 봄 나는 ‘토벌 중선부’(중앙선전부를 토벌하라)란 글을 발표했다. 홍콩 기자에 따르면 이 글은 3~4개월 사이에 22가지 언어로 번역됐다고 한다. 베이징대학의 지도자는 중앙선전부와 교육부의 압력 아래 나에게 정치·시사 논평을 쓰지 말 것과 외국 기자의 인터뷰에 응하지 말 것을 요구했다. 나는 이를 거부했다. 그해 9월 학교는 내 강의를 박탈했고 ‘석사 연구생 지도교수’ 자격도 취소시켰다. 그해 말 대학은 나보고 언론학과를 떠나 학내 고전문헌연구센터로 자리를 옮기든가 스스로 사직하라고 했다. 아니면 ‘직무 조정 불복종’을 이유로 강제 해직시킬 것이라고 경고했다. 나는 둘 다 거부했다.
지난 2월 미국 민주기금회는 내게 워싱턴에서 방문학자 자격으로 반년 동안 학술연구에 종사할 것을 제안했다. 이에 대해 학교 당국은 출국을 허가할 수 없으며 만약 출국한다면 ‘자동 사직’ 처리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나는 베이징대학 총장에게 1만1000자에 달하는 장문의 편지를 보내 “서로 다른 생각을 포용할 수 있는 관용의 정신을 바탕으로 사상의 자유를 추구해온” 베이징대학의 창립 이념을 일깨우며 대학이 부디 나를 ‘차버리지’ 말 것을 호소했다.
지난달 16일 나는 중국을 떠나 미국으로 갔다. 다음날인 17일 대학은 내가 ‘자동 사직’ 처리됐다는 결정을 베이징의 집으로 보냈다. 나는 출국 전 총장에게 보낸 편지에서 “만약 내가 해고당한다면 베이징대학과 학술 교류를 진행해온 옥스퍼드, 케임브리지, 하버드, 예일 등 전 세계 대학총장들에게 베이징대학이 어떻게 학문의 자유를 침해하는 곳인지 똑똑히 보고 항의하라고 할 것”이라고 했다.
민웨이팡 베이징대 당위원회 서기는 스탠퍼드 대학의 박사이다. 나는 특히 스탠퍼드대 헨 니스 총장의 도움을 청할 것이다. 저우지 교육부 부장은 뉴욕주립대 박사다. 나는 베이징대에 압력을 넣은 그의 행위가 뉴욕주립대 교육 이념과 일치하는지 물어볼 것이다.
중국 최고의 지성이 모이는 베이징대학조차 ‘상부의 이데올로기 압력’을 ‘노여움을 사서는 안 되는 주인’으로 모시면서 학술 언론 사상의 자유는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대학교수가 언론의 자유를 보장받지 못하는 사회에서 하물며 다른 계층과 단체는 무슨 자유를 보장받을 수 있겠는가. 대학 총장들마저 언론과 학술의 자유를 박해하는 정권의 공범자이자 하수인으로 전락한 사회에서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해 어떤 희망을 품을 수 있겠는가.
중국 대학에서 언론과 학술의 자유를 난폭하게 짓밟는 건 나만의 경험이 아니라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일이다. 내 중학 동창은 지방대학 교수로 있는데 지난 2월 학교에서 매주 한번씩 거행하는 국기 게양식에 대해 이견을 발표했다가 1개월 수업 중지라는 처분을 받았다. 칭화대학은 최근 모든 본교 교수에게 외국 기자의 인터뷰에 응하지 말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2차대전 시기 중국의 한 기자에 따르면 미 웨스트포인트(육군사관학교)에서는 장교가 사병을 때리거나 욕하지 않도록 가르쳤다고 한다. 그러나 미국 육사를 졸업한 중국인이 귀국해 중국 장교가 되면 다른 ‘군벌’의 장교와 똑같이 사병에게 상욕을 해대며 두들겨 팼다고 이 기자는 증언했다. 신중국 성립 이후 해외 유학을 통해 서방의 박사학위를 따낸 이들이 대학에 자리 잡아 지금의 대학 총장들이 되었다. 이들은 반세기 전 미국 육사 출신 중국 장교와 마찬가지로 서방에서 학문의 자유를 배웠으면서 중국에 돌아와서는 독재정권의 대리인이 되어 학문의 자유를 두들겨 패고 상욕을 해대는 사상헌병으로 변신했다. 서방에서 교육받을 기회가 없었던 그들의 전임자보다 나을 게 없지 않은가.
이런 현상에 대해 서방의 대학도 문제의식을 느껴야 한다. 당신들의 대학을 찾은 유학생들이 자유의 정신을 배우고 돌아가는 대신 ‘기술’만 배우고 돌아간 셈이기 때문이다. 당신들은 ‘도구적 이성’을 길러내는 ‘지식공장 공장장’이 아니지 않은가. 새로운 ‘학위 관리 준칙’을 제정해, 귀국한 뒤 인류 문명의 준칙을 배반하는 유학생에 대해서는 학위를 박탈하는 제도를 만들라.
오늘날 중국은 수치스러움을 아는 사람이 너무 적다. 중국의 대학 총장들은 정치권력에 굴복해 학문의 자유를 짓밟는 일이 얼마나 수치스런 일인지 깨닫지 못하고 있다. 스스로 수치심을 회복하지 못한다면 나는 세계의 이성에 호소할 수밖에 없다. 세계의 대학인들은 학문과 언론의 자유를 짓밟은 베이징대학을 기억하라.
자오궈뱌오/ 전 베이징대 교수 언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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