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휴머니스트 의사 노먼 베쑨이 한 말이다. 나는 요즈음 의사 노먼 베쑨의 일대기를 아주 감동깊게 읽고 있다. 환자의 차트에 병명을 ‘폐결핵’이라고 써넣어야 할지, ‘경제적 빈곤’이라고 써넣어야 할지를 고민했다던 그는 질병의 원인과 빈곤사회를 통합적으로 파악하여 새로운 사회체제를 건설하는 것으로까지 그 의미를 확장시켰다. 또 그는 질병을 재생산하는 경제구조의 변화를 통하지 않고는 제대로 된 의술의 의미는 없다고 믿었다.
“우리는 환자들에게 ‘당신 지금 치료비를 낼 돈이 얼마나 있소?’라고 물을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해야 당신에게 가장 도움이 되겠소?’라고 물어야합니다”고 했던 그의 가르침은 각박한 시대를 살아가는 세상살이에 따뜻한 위로의 말이 되기에 충분하다. 나는 요즈음 병원을 찾아야하는 나의 대상자들과 대화를 하면서 ‘내가 어떻게 해야 당신에게 도움이 되겠어요?’라는 질문이 그다지 필요없다는 것을 절감한다. 이미 그들은 치료비를 낼 형편이 되지 않기 때문에 나를 찾은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어 줄 최대한의 지원처를 찾아내야 한다.
사시(斜視)로 고민중인 사춘기 아이, 혼혈인 것도 힘겨운데 액취증까지 고민해야 하는 아이, 위암 진단을 받고도 더 이상의 치료를 받을 수 없는 아이의 어머니, 다리에 물이 차서 거동을 못하는 엄마 없는 아이의 할머니...
사회복지사이자 간호사인 나는 이들이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의 필요성을 병원에 열심히 써서 보낸다. 혼혈 아이로서, 혹은 혼혈 아이를 둔 어머니로서 녹록치 않게 살 수 밖에 없었던 그들의 가난한 삶을 풀어내는 것부터, 그래서 왜 이들에게 사회의 지원이 필요한가에 대하여 마치 연극 주인공을 위한 대본이라도 쓰는 것처럼 하나 하나 공들여 써 내려간다. 나의 ‘대본’에 감동을 해줄 배우와 관객이라도 있다면 적어도 그들에게 ‘치료비를 낼 돈이 얼마나 있느냐’라고 묻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베쑨은 국민의 건강이 정부의 책임이라는 인식이 뿌리만 내리면 국민건강이 보호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1936년 선언서를 채택하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국민보건을 확보하기 위한 최상의 방법은 질병을 재생산하는 사회를 변화시킴으로써 무지와 빈곤과 실업을 없애는 것입니다. 환자 개개인이 자신의 치료비를 지불해야하는 현재의 관행으로는 국민보건을 확보할 수 없습니다.”
예방을 할 수가 없어서, 제 때 치료를 할 수가 없어서, 치료 후 제대로 관리를 할 수가 없어서, 그래서 내가 도와야하는 나의 직업적 의무들은 한 휴머니스트 의사 노먼 베쑨의 삶을 되돌아보는 것이 계기가 되어 단순한 의무감을 기쁨으로 바꾸어 놓았다.
그러나 나는 나의 기쁨을 만끽(?)하기 보단, ‘치료비를 낼 돈이 얼마나 있느냐’에 따라 치료가 달라지거나 혹은 삶과 죽음이 바뀌지 않아도 되는 그런 세상에서 더 이상 나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기를 더 바란다.
이지영/펄벅재단 사회복지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