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4.19 17:36
수정 : 2005.04.19 17:36
1990년대 중반 가트(GATT) 협상 때 프랑스 대표단이 잭 발렌티 당시 미국영화협회 회장을 만났다. “당신들은 훌륭한 치즈를 만듭니다. 계속 치즈를 만드시고, 영화는 우리가 만들게 해주세요.”(잭 발렌티) “당신들은 이미 (전세계) 영화의 95%를 만들고 있습니다. 얼마나 더 원하시는 겁니까?”(프랑스 대표단) “물론 100%요.”(잭 발렌티)
한 인터넷 사이트(understandfrance.org/France/FrenchMovies.html)에 소개된 이 대화 내용은 누군가가 지어낸 우스개처럼 보이지만, 이 사이트는 사실로 전하고 있다. 거기에 믿음이 가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대화의 한 당사자가 잭 발렌티라는 점이다. 그는 66년부터 2004년까지 38년 동안 미국영화협회 회장을 맡으면서 자국 영화를 보호하려는 각국의 노력들을 무산시켰다. 70년대 중후반 전세계의 흥행을 석권하면서 ‘블록버스터’라는 용어를 만들어낸 <조스>가 브라질에서 브라질 영화에 흥행순위가 밀리자 그는 전용 비행기를 타고 브라질로 날아가 브라질 스크린쿼터의 대폭 축소를 이끌어냈다. 99년에는 한국에 와서 김대중 당시 대통령을 만나 스크린쿼터 폐지를 요구했다. 잭 발렌티 같은 확신범이라면 ‘100%’라는 과격한 말을 했을 것 같다.
둘째는 대화가 미국과 프랑스 사이에 오갔다는 점이다. 두 나라는 오는 5월에 최종안이 확정될 유네스코 문화다양성 협약을 두고 국제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문화전쟁’(<한겨레> 14일치 3면)의 양쪽 진영을 대표하고 있다. 각국 정부에 영화 등 자국 문화상품의 보호정책을 허용해야 한다는 내용이 뼈대인 이 협약에, 프랑스는 법적 강제력을 부여하자고 외치고 미국은 강제력 없는 상징적 선언으로 두자고 맞선다. 쉽게 말해 프랑스의 주장은 잭 발렌티 같은 이가 남의 나라 스크린쿼터에 시비 걸지 못하게 하는 국제법을 만들자는 거고, 미국은 그런 법을 눈뜨고 못 보겠다는 거다.
프랑스와 미국의 문화전쟁은 뿌리가 깊다. 2차대전 종전 직후인 46년 프랑스의 레옹 블룸 총리와 미국의 제임스 번스 국무장관이 회담을 통해, “프랑스의 극장은 1년에 112일 동안 의무적으로 프랑스 영화를 틀도록 한다”는 스크린쿼터 조항에 합의했다. 영화 수입 허가제를 통해 자국 영화를 보호해 왔던 프랑스는 제도를 스크린쿼터로 바꾸는 대신 마샬플랜에 따른 10억달러 경제복구 지원금을 미국으로부터 받았다. 그랬다가 48년 프랑스의 영화인을 비롯한 문화인들의 대대적인 시위에 봉착해 두 나라 정부는 다시 협상을 벌여 스크린쿼터를 140일로 늘렸다. 이후 영화 보호정책의 근간을 방송쿼터와 제작지원금 지급으로 바꾼 프랑스는, 90년대 들어 미국이 다자간 무역협상을 통해 문화상품 보호정책을 문제삼기 시작하자 문화다양성 협약을 가지고 미국을 압박하고 있다.
한국은 어떤가? 문화다양성 협약에서 미국과 같은 태도임을 밝힌 일본, 뉴질랜드, 오스트레일리아 정도를 빼고 유럽연합 나라들과 캐나다, 브라질, 남아프리카공화국, 중국, 인도 등 대다수 나라가 프랑스를 지지하는 상황에서 아직도 분명한 태도를 밝히지 못하고 있다. 국내 문화단체들은 외교통상부의 이런 자세를 두고 ‘미국의 눈치보기’라고 비판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16일 “미국사람보다 더 친미적인 사고방식 갖고 얘기하는 (한국) 사람이 내게는 제일 힘든다”고 말했다. 이 말은 동북아 균형자론을 문제삼는 이들을 두고 한 것이겠지만, 문화단체가 외교통상부를 두고 하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다. 스크린쿼터를 두고 미국과 직접 다툴 때, ‘스크린쿼터를 내주고 다른 걸 받자’고 말하는 건 친미적인 태도가 아닐 수도 있었다. 그러나 미국과 스크린쿼터를 두고 다툴 필요조차 없게 국제법을 만들자는 게 프랑스 쪽 주장인데, 이걸 지지한다는 말조차 못하는 건 친미적이다.
임범 문화부장
is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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