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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4.19 19:07 수정 : 2005.04.19 19:07

금융감독위원회가 최근에 실질적인 특별사면권을 보유하는 무소불위의 권력기구가 되었다. 사건의 발단은 회계분식에 대한 증권집단소송제의 실시를 미루면서 앞으로 2년 동안 회계분식을 한 기업이 과거의 분식회계를 수정하여 공시할 경우에 금감위가 이에 대한 조사를 사실상 하지 않겠다고 결정한 것이다. 심지어는 분식회계를 수정하기 위해서 새로운 역분식회계를 하는 경우에도 조사를 하지 않겠다고 한다. 금감위의 이런 결정은 시장질서를 바로잡아야 할 자신의 존립이유를 부정한 것은 물론이고, 자신에게 주어진 권한을 임의적이고 자의적으로 행사하는 초법적인 권력기구를 자임하는 꼴이다.

금감위의 논리를 사기범죄에 빗대어 말하면 이렇다. 사기꾼이 ‘나는 과거에 이런 사기를 친 적이 있다. 사기를 친 금액은 얼마이고 지금은 사기를 치고 있지 않다’고 선언하면 검찰은 수사를 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금감위는 조사를 하지 않고도 사기꾼이 자백한 내용의 진위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상시적으로 감독을 하는 은행과 신용카드회사가 망할 때까지 아무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던 금감위의 전력으로 볼 때에 수백개 기업의 교묘한 회계분식을 조사도 하지 않고 알 수 있다는 것은 믿기 어렵다.

금감위 결정의 더욱 심각한 문제는 사기사실을 알아도 조처를 취하지 않을 것이고 피해자에게 그 내용을 알려주지도 않겠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과거의 사기를 고백하기 위해서 새로운 사기범죄를 저질러도 조사를 하지 않겠다고 하니 오히려 새로운 사기범죄를 조장할 위험마저 있다. 결과적으로 금감위의 결정은 앞으로 2년간 과거에 저질렀다고 주장하는 회계사기에 대해서 면죄부를 주는 것과 같다. 보다 정확하게는 금감위가 아니라 사기꾼이 자신의 범죄에 대해서 공시하고 스스로 면죄부를 주는 웃기는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증권집단소송법은 소송절차에 관한 제도일 뿐이지 기업에게 새로운 민사 또는 형사상의 책임을 부과하지 않는다. 지금의 소송절차로는 소액투자자가 피해를 구제받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개인이 대기업을 상대로 분식회계의 내용을 밝혀낼 능력이 없을 뿐 아니라 설령 밝혀낸다고 해도 소송비용이 피해금액보다 수십, 수백배 크기 때문에 사기를 당하고도 소송을 제기하지 않는다. 설령 소송을 제기해도 우리나라의 큰 법률법인들은 대기업을 상대로 한 소액투주자의 소송을 맡아줄 만큼 어리석은 정의로움을 가지고 있지 않다.

한마디로 소액투자자 개인이 회계사기를 친 대기업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수행하는 것은 그림의 떡이다. 그래서 집단소송제를 도입하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소액투자자를 보호해야할 임무를 맡은 금감위가 집단소송제 연기에 앞장선 것으로도 부족해서 이제는 회계사기를 조사조차도 하지 않을 것이고 사기내용도 알려주지 않겠다고 한다. 사기꾼은 자기고백으로 면책을 받고 사기피해자인 개인 투자자는 피해보상을 받을 길이 더욱 어려워졌으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금감위가 ‘회계사기 특별사면권’을 갖는 것과 같은 엄청난 반시장적인 권력기구로 자신을 변신시키는 데에 들인 노력은 내부규정을 개정한 것이 전부다. 그것도 금융감독위원회는 회의조차 열지 않고 서면으로 결의했다. 이전에 많은 논의를 했고 긴급한 사안이라고 변명을 늘어놓지만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할 위험이 있는 이런 중대한 사안은 국회가 법률개정을 통해서 해야 할 일이지 정부부처가 서면결의로 뚝딱 해치울 일이 아니다. 더욱 한심한 것은 금감위는 면책받을 기업과 회계법인에게는 개정내용을 설명해주는 친절을 베풀면서도 정작 금감위가 보호해야할 대상이고 규정개정의 가장 큰 피해자인 소액투자자들을 배려하거나 구제하려는 노력의 흔적은 찾아볼 수가 없다는 것이다.

금융감독위원회는 무엇을 위해서 그리고 누구를 위해서 존재하는가. 검찰이 자기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아서 사사건건 특별검사가 임명되는 수모를 당했다. 금융감독위원회는 차라리 기업보호위원회로 이름을 바꾸고 투자자보호특별위원회를 별도로 설치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장하성/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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