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4.19 19:09
수정 : 2005.04.19 19:09
고위공직자의 토지 투기가 또 드러났다. 홍석현 주미대사의 730억원대 재산 가운데 상당 부분이 실수요와는 무관한 부동산이고 일부는 가족이 위장전입해서 구입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최근에 비슷한 문제로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 최영도 전 국가인권위원장, 강동석 전 건교부장관이 낙마했고, 파문이 그만큼 크지는 않았지만 일부 국회의원에 대해서도 의혹이 제기되었다.
토지는 인간의 노력에 의한 생산물이 아니고 국토는 국민 모두에게 하늘이 준 유한한 삶의 터전이다. 그러므로 토지를 통해 불로소득을 올리는 것은 옳지 않다. 이런 사실을 이해하는 데 무슨 특별한 지능이나 도덕성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상식과 양심을 지닌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런데도 토지를 재산 증식의 수단으로 악용할 수 있는 이상한 제도가 계속되면서, 국민이 집단적 양심불량에 빠져 있다. 너, 나 없이 기회만 생기면 땅으로 한몫 잡으려고 한다. 남들도 다 그렇게 하니까, 또는 법이 금하고 있지 않으니까, 혹은 나만 가만히 있으면 뒤처지니까 등의 이유를 대면서.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청와대에서는, 인사 검증 과정에서 투기 의혹을 알고 있었다고 발표하였다. 아마도 투기 의혹이 있는 사람을 제외하고 나면 능력 있는 고위공직자를 구하기 어려운 모양이다. 그러나 도덕성을 외면하고 임명하면 사후에 의혹 제기와 사퇴라는 불행한 일이 되풀이된다. 고위공직자에 취임할 만한 사회지도층이 어쩌다 이 지경이 되고 말았는지 걱정스럽다.
이제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할 시점이 된 것 같다. 위법행위는 법에 따라 조처해야 하지만, 위법없이 불필요한 토지를 많이 소유한 경우에는 그로 인해 사회에 진 ‘도덕적 부채’를 탕감하는 제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전 국민이 토지 투기를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사회 분위기 속에서 저지른 ‘원죄’를 사면받을 수 있는 적절한 절차를 마련하고 이런 절차를 성실하게 이행한 사람에게는 더 이상 토지 투기와 관련된 도덕적 책임을 추궁하지 말자고 제안하고 싶다.
구체적으로, 공무원이 재산등록을 할 때 소유 토지가 실수요임을 해명하도록 하고, 해명을 하지 않거나 해명의 설득력이 없는 토지는 백지신탁을 시키도록 하자. 그리고 이런 토지에 대해서는 취득 당시 지가의 원리금만을 퇴직 때 돌려주도록 하자. 신탁 당시의 지가가 아니라 과거 취득 당시의 지가임에 주목해 주기 바란다.
이로써 공직자의 토지 불로소득이 완전 환수되는 것은 아니다. 사전에 토지를 매각하면 그 이전의 불로소득은 소유자의 수중에 들어가며 또 실수요 토지에서 생기는 불로소득도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적어도 공직 취임 이후의 토지 재테크는 거의 차단할 수 있기 때문에 공정한 정책을 펴는 데 크게 기여할 것이고 이를 계기로 사회에 ‘토지 불로소득은 안 된다’는 강력한 신호를 보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국민의 집단적 양심불량을 막고 성실한 사람이 잘 사는 사회를 만들려면 백지신탁과 같은 과도적 방편 이외에 근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즉 전국의 모든 토지를 대상으로 매입지가의 원리금 이상의 소득이 발생하지 않는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매입지가의 원리금만을 보장하는 조세를 학술적으로 ‘지대이자차액세’라고 한다. 매년 지대(즉 토지임대가치)에서 매입지가의 이자를 공제한 금액을 징수하는 세금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토지 투기를 하라고 해도 아무도 안 할 것이다. 투자액 원리금 이상의 이익이 나지 않으므로 재산증식을 위해 굳이 토지를 매입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필요한 사람만 토지를 매입할 것이므로 시장이 정상화된다. 토지 투기는 사라지고 자금이 생산적인 곳으로 배분되므로 사회정의와 경제효율이 동반 실현된다. 개발이익을 노리는 불필요한 개발압력도 사라지므로 환경도 보전할 수 있다.
이런 목표로 나아가는 최선의 방법은, 토지 보유세를 대폭 인상하면서 다른 세금을 그 수입만큼 줄여가는 패키지형 세제 개혁이다. 현재와 같은 종합부동산세를 활용한다면, 적용 대상을 대폭 확대하고 건물보다는 토지에 집중하여 과세하여야 한다. 정부의 성찰을 기대한다.
김윤상/ 경북대 행정학과 교수·토지정의시민연대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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