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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4.20 18:49 수정 : 2005.04.20 18:49

최근 한국 록그룹 허클베리핀의 <올랭피오의 별>과 클래지콰이의 <인스턴트 피그>라는 음악 시디를 샀다. 그런데 두 장 모두 표지만 잠깐 보곤 바로 책상서랍에 넣었다. 들을 생각이나 시간이 없어서가 아니다. 이미 엠피3 플레이어에 음악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시디는 정식 구입 증명용일 뿐이다. 인터넷에서 구한 파일을 들어보지 않았다면 살 생각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함께 사려던 장필순씨의 5집 음반은 아직 구하지 못했다. 나온 지 8년이나 된 이 음반을 파는 인터넷 사이트를 찾지 못했고, 레코드점도 몇 곳을 뒤졌으나 허사였다. 엠피3 형태로 어렵게 구한 몇몇 수록곡을 그냥 듣는다면, 음반업계에서 주장하듯 장씨의 창작 의지를 꺾고 가요계의 발전을 막는 행위에 동조하는 걸까? 또는 이 음반을 더는 팔지 않는 음반업체의 이익을 침해하는 꼴인가?

물론, 가요를 인터넷에서 들어보고 엠피3으로 살 수 있는 길이 있다. 하지만 구입절차가 아주 복잡하고, 구입한 파일들은 몇몇 엠피3 플레이어에서만 작동하는 등 제약이 많다. 주된 요인은 불법복제 방지 장치다. 불법 엠피3 유통을 옹호하자는 게 아니다. 업자들의 이익 보호를 위해 사용자의 불편을 강요하면서 불법만 탓해서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문제는 단지 음악 유통에만 있는 게 아니다. 국립중앙도서관 등 공공기관들이 구축한 국가전자도서관(dlibrary.go.kr)이 있다. 그런데 이곳 자료 가운데 13만여권의 단행본, 7800편의 학위논문 등 상당수는 인터넷을 통해서 목록 검색만 되고 원문을 볼 수 없다. 저작권법 때문에 정해진 공공도서관의 컴퓨터로만 읽을 수 있다. “국가의 지적 문화유산을 편하게 만날 수 있습니다”라는 첫 화면의 문구가 무색할 지경이다.

저작권법은 디지털 기술 발전에 맞서, 문화 유통을 장악한 자본의 이익을 지켜주는 파수꾼으로 전락해가고 있다. 개인 홈페이지에 좋아하는 노랫말을 올려놓는 것도 저작권 침해인 상황이다. 저작권법이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사이버 국가보안법’이 되어간다는 비판도 무리가 아니다. 게다가 최근 몇몇 의원들이 내놓은 저작권법 전면 개정안은, 개인적 사용을 위한 복제마저 크게 제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래서 저작권법 개선 운동과 함께 저작권법의 간섭을 넘어서려는 움직임들도 나타나고 있다. 아이피레프트, 진보넷 등 사회운동 단체들이 벌이는 ‘정보공유 라이선스’(freeuse.or.kr) 운동이 그렇다. 이 라이선스는, 정보 공유 의사가 있는 이들이 저작권 공개 범위를 사전에 명확히 밝힘으로써 정보 유통을 촉진하자는 취지에서 나온 것이다. 영리에 이용하게 할지 말지와 원 저작물을 바탕으로 2차 저작물을 만들 수 있게 할지 여부에 따라 네 가지 유형이 있다. ‘영리·개작 허용’을 선택하면, 누구든지 원래 저작자의 허락 없이 돈벌이를 위해 저작물을 이용하거나 새로운 창작 활동에 쓸 수 있다.

특히 주목할 부분은, 2차 저작물에는 원래 저작물보다 더 제한적인 조건을 부과할 수 없다는 강제 조항이다. 그래서 예컨대 창작자들이 ‘영리 불허, 개작 허용’ 조건으로 저작물을 공개한다면, 금전적 손실을 전혀 보지 않으면서도 저작권법의 규제에서 자유로운 영역의 확대 재생산에 기여할 수 있다. 2·3차 저작물들도 계속 개작을 허용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물론 저작권법에 규정된 여타 권리들은 그대로 유지된다. 정보의 자유로운 소통이 모두에게 이롭다고 믿는 이들이 인터넷을 매개로 힘을 합친다면 이 영역은 놀랍게 확대될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아성을 위협하는 운영체제 리눅스, 브리태니커 사전보다 낫다는 열린 백과사전 ‘위키피디아’ 등이 그 잠재력을 증명하고 있다.

‘변변한 저작물이 없다’며 주저할 이들에게 도움이 될까 싶어, 저작권이 유보되기에 공개의 효과가 없는 <한겨레> 지면에 실리는 글을 뺀 글쓴이의 미래 저작물들에 ‘영리 불허, 개작 허용’ 조건의 정보공유 라이선스를 채택함을 밝힌다.

신기섭/논설위원 mari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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