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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4.20 19:13 수정 : 2005.04.20 19:13

일본이 동아시아에서 ‘왕따’가 됐다. 중국에서는 연일 반일시위와 일본상품 불매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중국 정부도 일본 정부를 비난하고 있다. 한국 국민과 정부 역시 일본에 대해 대단히 비판적이다. 그런데 사실 일본에게 더 심각한 것은 일본이 자국 시민들로부터 왕따 당한다는 것이다. 자국 시민에 의한 이런 왕따가 일본의 우경화와 국제적인 고립의 근본적 원인이다. 일본이 우경화와 국제적 고립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을까에 의문을 던지는 이유 역시 근본적 원인이 해결될 전망이 없기 때문이다. 작년에 있었던 전국적 조사에 따르면, 많은 일본인들이 정부, 공무원, 정당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것을 제도적으로 해결할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때문에 일본인들은 정치적 참여에 무관심해졌다. 이것은 자국 민주주의에 대한 회의적 전망으로 연결된다. 곧 일본인들은 일본의 민주주의가 10년 전보다 지금이 못하고, 앞으로 10년 후에는 더욱 나빠질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특히 이런 비관적 전망은 40대 이전의 젊은 세대에서 두드러진다. 그리고 이런 무기력과 비관주의는 결국 국가에 의한 시민의 소외와 국가의 우경화를 더욱 심화시킨다. 시민의 불만은 더욱 커진다. 말하자면, 시민사회와 국가가 서로 왕따 시키면서 동시에 왕따 당하는 악순환에 빠져 있다. 그 피해는 일본인들 자신의 것이다. 일본의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은 좌절됐고, 일본 기업인들은 해외 시장을 잃었으며, 일본인 여행객은 안전을 위협받고 있다.

우리는 일본의 전철을 밟지 말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일본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나는 이러한 악순환의 근본원인은 시민사회가 정치적으로 무능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일본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일본이 우리보다 훨씬 긴 시민사회와 민주주의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최소한 19세기 말부터 일본에서 시민사회가 성장했고, 적어도 2차대전 이후에는 제도적으로 민주주의가 완비됐다. 그런데도 일본의 민주주의는 아직까지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이다. 일본은 메이지유신 이후로 지금까지 시민사회의 도전이 국가의 개혁을 가져오지 못했다. 메이지유신도, 2차대전 이후 민주헌법도 위로부터 도입된 것이었다. 게다가 2차대전 이후로 지금까지 사실상 지금의 자민당이 일당지배를 해왔다. 오랜 역사를 가진 시민사회는 지방자치나 환경보호 등에서는 나름대로 기여한 바가 많지만, 국가권력의 구조 및 분배를 변화시키는 데는 무능력했다. 악명높은 금권정치의 구조를 깨뜨리는 데는 실패했다. 그리고 금권정치의 지속은 결국 국제환경에 따라 경제를 개혁하는 것마저 어렵게 했다. 현재 일본 경제가 성장동력을 잃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형식적으로는 민주주의 제도가 완비되었지만, 지배세력에 비해 정치적으로 무능력한 시민사회를 가진 일본은 예상치 못했던 어려움에 봉착했다.

우리는 일본의 예로부터 우리나라와 국민이 ‘지구화’라는 상황 속에서 주변국과 호혜적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중요한 몇 가지를 배울 수 있다. 우선 약소국의 국민들이 서운함을 느끼지 않도록 배려해야 한다. 특히 우리나라에 들어와있는 약소국 출신의 ‘이방인’들을 환대하자. 그들이 우리를 미워하게 만들어서는 안된다. 나는 미국에서 이방인으로서 미국을 경험했다. 그것이 나뿐만 아니라 나를 통해 미국을 보는 많은 사람들의 미국에 대한 태도에 심각한 영향을 준다. 두 번째로, 우리의 잘못 때문에 상처를 받은 외국인에게 우리 자신의 잘못을 흔쾌히 사과할 수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활동적이고 유능한 시민사회를 유지하는 것이다. 건전한 시민사회는 민주주의와 국가가 병들지 않도록 지켜주는 ‘빛과 소금’이다. 다행히 우리는 일본과는 달리, 민주주의에 낙관적이고 능동적인 시민사회의 싹을 가지고 있다. 귀한 싹을 잘 키워나가자.

최현/ 성균관대 서베이리서치센터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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