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4.21 19:10
수정 : 2005.04.21 19:10
“독립됐다고 했을 제 만세 안 부르기 잘했지”. 채만식의 1946년 작 ‘논 이야기’의 마지막 구절이다. ‘논 이야기’의 주인공 한 생원은 구한말과 일제 시대를 거치면서 수무 마지기 논을 모두 빼앗기고 소작농으로 전락하였다. 해방이 되고 일본인이 쫓겨갔으니 농지를 되찾을 것으로 생각했으나, 돈을 주고 도로 사야 한다는 사실에 화가 난 한 생원은 국가의 존재 의의를 통렬하게 비판한다. “독립이 된 앞으로도 아전이나 일본 놈 대신에 가난한 농투성이를 핍박하는 권세있는 양반들이 생겨날 것이요”, “나라라고 하는 것은 내 나라였건 남의 나라였건 백성에게 고통이나 주자는 것이지 유익하고 고마울 것은 조금도 없는 물건이었다”.
지난 주 정부는 쌀 관세화 협상 이행계획서 수정안을 발표하였다. 쌀 관세화를 10년간 유예하는 조건으로 의무수입량을 두 배로 늘리고, 의무수입쌀의 시판 비중을 30%까지 늘린다는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농민들이 받는 충격은 엄청난데, 더욱이 쌀 협상의 부가합의 형태로 다른 농산물에 대해서도 추가 개방의 길을 열어 놓았다는 것이 새롭게 알려졌다. 즉 정부는 중국에게 사과, 배 등 4종의 과일에 대한 식물검역상 수입위험 평가절차를 신속히 추진하기로 합의하고, 아르헨티나, 캐나다, 이집트와 인도에게도 닭고기, 오렌지, 완두콩, 유채유, 쌀 등에 대해서 추가 양보를 하였다는 것이다. 농민단체들은 즉각 ‘제2의 마늘협상을 연상케 하는 이면 합의’라고 규탄하고, 쌀 협상 전문공개, 국정조사 실시, 협상 책임자 문책 등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대해 농림부는 식물수입 검역절차를 협의하기로 한 것일 뿐 수입을 허용한 것이 아니고, 협상 상대국 입장을 감안할 때 협상 원문을 일방적으로 공개할 수 없다고 해명하였다.
그러나 정부의 이러한 해명은 오히려 의혹과 농민들의 분노만 증폭시킬 뿐 사태 해결에는 도움이 되지 않고 있다. 중국이 지난 해 쌀 협상 과정에서 농산물의 검역완화를 요구한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나, 당시 농림부 당국자는 쌀 협상과 관련해 다른 품목이나 검역절차에 대한 양보는 없다고 언명하였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쌀 협상이 다 끝난 마당에 부가합의서 형태로 추가 양보를 한 이유가 무엇인지 석연치 않다. 쌀 협상 파문은 농민들의 억누른 분노에 불을 질러 걷잡을 수 없는 사태를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 정부는 별게 아니라는 식으로 얼버무릴 게 아니라 협상과정과 결과를 공개하고 전문가의 철저한 검증을 받아, 국민의 이해를 구할 것은 구하고 책임질 것은 져야 할 것이다. 만약 검증 과정에서 결정적인 문제가 발견되면 국회는 쌀 협상 결과에 대한 비준을 거부해야 한다. 이는 진행 중인 세계무역기구(WTO) 도하라운드(DDA) 협상에서 같은 잘못을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
지난 우루과이 라운드 농업협상이나 2000년 한중 마늘협상 그리고 이번 쌀 협상 파문의 근본 원인은 정부의 잘못된 농산물협상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동안 정부는 대외협상에서 농업부문의 이익과 다른 부문의 이익이 상충되면 농업부문을 희생해 왔고, 농업부문 내에서는 쌀과 다른 농산물의 이해가 충돌되면 다른 농산물을 희생하는 협상 태도를 취해왔다. 그리고 협상 결과는 외교 관례를 앞세워 공개하지 않고, 언론 등에서 크게 문제가 되면 마지못해 책임자를 문책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얼버무려 왔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잊혀질만 하면 문책당한 인사가 오히려 정부 요직에 승진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누가 농민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온 몸을 던져 협상에 임하겠는가.
해방 60년이 되는 2005년 봄, 한 생원의 독백이 이어진다. “난 오늘버틈 도루 나라 없는 백성이네. 제~길 나라가 있으면 백성한테 무얼 좀 고마운 노릇을 해 주어야 백성두 나라를 믿구 나라에다 마음을 붙이구 살지”. “나라가 다 무어 말라비틀어진 거야? 나라 명색이 내게 무얼 해준 게 있길래 이번엔 쌀 시장 개방도 모질라 이면 합의까지 하는 기여. 그게 나라야?”
박진도/ 충남대 경제무역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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