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4.24 21:54
수정 : 2005.04.24 21:54
<지식인의 두 얼굴>, 얼마전 재미있게 읽은 책이다. 지식인들은 그 좋은 머리로 짜낸 생각들을 멋지게 포장해서 보통사람들을 가르치고 휘저으려 든다.
그런데 그들의 실제 삶도 과연 그리 멋졌을까? 이 책은 우리가 떠받드는 위인들의 또 다른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톨스토이는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교훈소설을 썼다. 죽을 둥, 살 둥 뛰어다녀 봤자 죽을 때는 제 관이 묻힐 한평 땅밖에 못가지니 욕심 부리지 마라. 이 이야기를 읽고는 ‘맞아, 욕심내지 말고 살아보자’고 다짐해 보지만 치열한 생존경쟁의 현실에서 그 다짐은 하루도 못간다. 톨스토이 자신이 평생을 성욕, 물욕, 명예욕에 시달렸다. 저 자신이 여자들에게 욕심을 내놓고는 거꾸로 여자들을 음탕과 방종의 원흉이라며 사람취급을 안했다.
사실 성(性)은 모든 존재들이 존재하게끔 하는 기본 조건이다. 그 자체로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니다. 성에 지나치게 매달리거나, 상대방을 그저 제 욕심을 채우는 수단으로만 취급하는데서 소위 선악의 구별이 비로소 나올 뿐이다. 톨스토이 자신의 지나친 욕심에 대해 그저 ‘내 탓이요’라고 조용히 혼자 되뇌였으면 될 것을 성욕 자체를, 나아가 애꿎게 여자들을 마귀 대하듯 했던 그는 세상 그리고 존재를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한 미숙아이지 싶다. 그가 가르치려 들었던 보잘 것 없어 보이는 농노는 아마 그 이치를 알고 있었을 게다. 사실 ‘내 탓이요’도 제 자신을 향해 조용히 하지 않고 이웃과 사회를 향해 떠들썩하게 외치면 이 또한 저 잘났다고 자랑하는 일이 될 것이다. 예수께서 이미 한 말씀 하셨다.
‘너희는 단식할 때에 위선자들처럼 침통한 얼굴을 하지 말아라. 그들은 단식한다는 것을 남에게 보이려고 얼굴에 그 기색을 하고 다닌다.’
성욕말고 물욕도 그렇다. 사자는 저 살기위해 영양새끼를 갈가리 찢는다. 거기에는 선도 없고 악도 없다. 이 피곤한 세상 겨우 살아가려면 좋은 학교 나와 좋은 직장 가지려고 아등바등할 수밖에 없다. 집 한 채 마련하려면 부동산투기며 주식투자도 안 할 수가 없다.
먹을 음식, 입을 옷, 누울 집 등 이 모든 것을 신자들이 마련해주기에 신부, 목사, 스님들은 불쌍한 신자들에게 무작정 욕심을 버리라 말씀한다. 그러다 자칫 <지식인의 두 얼굴>이 될 수도 있다. 요컨대 존재가 지니는 기본조건, 성욕이며 소유욕이며 명예욕 - 이 명예욕도 ‘나’라는 존재를 확장하고 영구보존하려는 존재의 속성 - 그 자체는 선도 악도 아니요, 존재와 비존재를 넘어선 절대자가 존재에게 준 자연스러움(Let it be)이다. 스승의 이름으로 이 욕구 자체를 단죄한다면 한편으로는 거기에 끌려갈 수밖에 없는 존재의 속성상 저 위대한 톨스토이처럼 얼굴이 두 개가 되거나 평생을 죄의식 속에서 시달리는 정신분열증 환자가 되고 말 것이다.
존재의 전제조건인 나의 여러 욕구들을 다른 사람, 다른 생명체, 다른 물건들의 욕구와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 어떻게 하면 물건을 포함한 타자를 맹목적으로 나의 수단으로 삼지 않을 수 있을까. 이 고민은 다른 말로 자비요, 사랑이다. 한끼 안 먹으면 당장 배고프고 내 자식 낳아 ‘나’를 계속 유지하려는 이 존재의 냉엄한 속박 속에서 평생 고민해야 할 나의 화두는 바로 이 ‘사랑밖에 난 몰라’이다.
교황이나 성철스님 가신 뒤 사람들은 그야말로 야단법석을 떨었다. 그 분들을 깨달은 이, 성인으로 떠받든다. 하지만 깨달은 ‘이’는 성철이란 법명을 가진 그 개인이 아니요, 하늘아래 성스런 ‘존재’는 없다. ‘나’란 에고(ego)나 ‘존재’는 그 속성상 깨달음이나 성스러움과는 같이할 수가 없다. 이 ‘나’란 ‘존재’가 깨닫고 성인되려는 것 자체가 ‘나의 확대’라는 더 고차원의 욕심일터. 깨달으려, 성인되려 안달하지 말고 그저 내 옆의 보기 싫은 인간이며 밤잠을 설치게 하는 모기며 우리를 순식간에 빈털터리로 만드는 태풍과 어찌 화해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것이 필부필부인 내 주제에 맞는 일이지 싶다. 삼시 세때 같이 둘러앉아 밥을 먹는 것도 참 즐겁고 암수가 서로 어울려 구름과 비처럼 정을 나눔도 참 즐거운 일이다.
김형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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