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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4.25 20:07 수정 : 2005.04.25 20:07

예전에 비해 우리는 육체적인 활동이 너무 부족한 환경에 살고 있다. 그래서 헬스클럽이나 운동 동호회에 들기도 하지만, 생활이 곧 운동이었던 옛 사람들에 비하면 역시 운동량이 턱없이 부족하다. 더구나 그마저 게으른 사람들은 아주 비만 쪽으로 가거나 너무 야윔 쪽으로 흘러버린다.

야윔과 비만은 서로 상반된 개념 같아도 영양소 분배의 불균형에서 온 다는 점에서는 같다. 마찬가지로 영양과잉과 극심한 영양실조도 똑같이 당뇨병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이렇듯 정상적인 생체리듬, 즉 자연의 몸이 원하는 생활을 하지 않으면 비만과 허약 그에 따른 여러 신체장기의 기능장애가 일어난다. 동물원 환경중의 대표적인 부작용이 바로 이 ‘운동부족’이다. 생태적이고 테마 집약적인 동물원이 필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우리나라 같이 동물 종류와 숫자만 늘리기에 급급하다 보면 그 동물들은 운동부족에 기인한 필연적인 질병들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우리 동물원에도 비교적 넓은 곳에서 기르던 미니호스(소형말) 한 쌍이 있었다. 워낙 순하고 사람을 잘 따라서 비록 큰 동물이지만, 어린이들이 동물과 가까이 접촉할 수 있는 어린이 동물사로 보내기로 했다. 그곳은 면적이 원래 있던 곳의 절반정도이고 바닥과 벽은 청소하기 쉽게 평평한 콘크리트로 만들어져 있고 늘 어린이들의 접촉과 소음에 시달리는 곳이다.

그런데 옮기고 나서 한달 후부터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수컷 미니호스는 갑자기 여위기 시작하고 암컷은 반대로 비만해 지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피부병에 다리절음까지 생겼다. 확실한 원인을 모르던 나는 수컷에게는 영양제를 암컷에게는 소염제를 처방하는 수준에만 머물렀다. 결국 두 마리는 꼴이 엉망이 된 채, 일단 보기 싫어서 원래의 자리로 다시 돌려보냈다.

더욱 이상한 것은 제 자리로 돌아온 후 그들의 변화였다. 아무런 치료를 안 했는데도 수컷은 갑자기 식욕이 왕성해지고 암컷은 다리절음이 씻은 듯이 나아버렸다. 그때 내가 깨달은 것은 바로 ‘환경치료’라는 개념이다. 울퉁불퉁하지만 부드러운 흙바닥, 약간의 경사진 언덕배기, 그리고 사람과 접촉이 줄어든 환경이 이들의 자연치유력을 이끌어 낸 것이었다. 피부병도 나았는데 원래 비비거나 빨기를 좋아하는 말들에게 아마 시멘트가 독이 됐나 보다.

이런 경우는 비단 말뿐만은 아니었다. 한동안 진행성 관절염과 쇠약으로 인해 몇 년을 두고 하나 둘 죽어가서 몇 마리 안 남은 바바리양을 어떤 사육사의 제안으로 면양이 사는 넓은 사육장으로 옮겨 섞어 살게 했다. 그랬더니 그 증상들이 말끔히 사라지고 이제는 그 곳의 왕좌를 차지하면서 마음껏 점프력을 과시하고 다닌다.

비록 동물들 사례지만 어쩌면 우리 도시환경 자체가 이 동물원의 확대판일 수도 있다 생각한다. 사면이 편편한 콘크리트 공간으로 둘러싸이고 지루한 일상의 반복적인 생활과 수많은 낯선 사람과 사물과의 잦은 접촉은 동물원의 나쁜 환경들과도 너무 흡사하다. 소위 도시병이라는 성인병들이 바로 이 도시의 환경에서 온 것인지 모른다. 동물들을 보면서 더욱 절실히 느껴지는 건 이 도시를 빨리 떠나야겠다지만, 몸은 자꾸 원하는데 마음은 쉽사리 결정을 못 내리고 있다.

최종욱/광주우치동물원 수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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