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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4.25 20:12 수정 : 2005.04.25 20:12

지난해 12월 납치피해자 요코다 메구미의 것이라며 평양에서 받아온 유골이 데이쿄대학의 감정 결과, 다른 두 사람의 것이라는 일본 정부의 발표는 커다란 충격이었다. 11월의 평양회담은 북한 쪽의 성실한 재조사 결과를 듣기 위한 것이었고, 북-일 교섭을 재개하기 위한 결정적인 최후의 단계로 여겨졌다. 거기서 이런 놀랄 만한 사실이 드러나 말문이 막혔다. 누구보다 북-일 관계의 정상화를 바라왔던 사람들의 놀람과 절망이 가장 컸을 것이다. 나도 그 가운데 한 명이었다.

하지만 올 1월24일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비망록을 발표해 일본 쪽의 주장에 자세하게 반박했다. 감정서에 감정한 사람의 이름이 기재돼 있지 않고, 감정 방법에 문제가 있으며, 2개 기관에서 감정한 의견이 엇갈리는 것은 문제라는 비판이다. 이 비망록을 읽고 조금 생각이 바뀌었다. 일본 정부가 디엔에이를 검출할 수 없다고 한 과학경찰연구소의 감정결과를 무시하고, 데이쿄대학의 감정결과만 뛰어나다며 절대시한 태도에 문제는 없었던가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

2월 들어 영국 과학잡지 <네이처>(2월15일호)에서 이 문제를 다뤘다는 얘기를 들었다. 일본 언론에는 보도되지 않은 감정인 요시이 도미오 데이쿄대학 강사의 말이 실려 있었다. 이 잡지는 “화장한 표본을 취급한 경험이 없는 요시이는 그의 테스트가 확정적이지 않으며, 샘플이 오염됐을 가능성을 인정했다”고 전했다. 요시이는 “유골은 무엇이든 흡수하는 딱딱한 스폰지와 같다. 만일 그것을 다뤘던 누군가의 땀과 기름이 스며들면, 아무리 준비를 잘해도 제거할 방법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1200℃에서 화장한 뼈로부터 디엔에이는 검출되지 않는 것이 보통이며, 요시이가 검출했던 두 사람의 디엔에이는 유골을 만졌던 다른 사람의 것일 가능성이 있다. 이것은 큰 일이다. 나는 두 나라의 교섭에선 일방적으로 상대방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데이쿄대학 감정이 제기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생각하는 게 필요하며, 그를 위해 권위있는 제3국의 의료기관이 재감정하는 데 합의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하게 됐다.

지난 3월30일 나는 북-일 국교촉진국민협회의 대표 자격으로 게이오대학의 오코노기 마사오, 도쿄대학의 기미야 다다시 교수와 함께 평양을 방문했다. 북-일 교섭 책임자의 한명인 송일호 외무성 아시아국 부국장과 3시간 동안 회담했다. 송씨는 <네이처>에 실린 요시이의 발언을 중시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요시이가 인정한 이상 세번, 네번이라도 재감정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요시이가 기자에게 밝힌 대로라면, 북한 쪽의 학자와 더불어 재감정을 하든가, 영국·프랑스의 학자를 포함하는 방법도 있다. 디엔에이 감정이 행해진 과정이 문제다.”

송씨는 일본 외무성에 배신당했다며 거의 절망하고 있는 인상을 주었지만, 그의 의견은 적극적으로 사태를 타개하는 길을 제안한 것이라는 생각이다. 하지만 일본에선 건네받은 뼈로부터 디엔에이가 나올 것 같은 10개의 뼈조각을 골라내 2개의 기관에서 5개씩 사용했기 때문에 재감정은 불가능하다는 견해가 나오고 있다. 나는 귀국 뒤 요시이가 다른 교수와 공동으로 집필한 <디엔에이 감정 입문>을 다시 읽어보았다. 요시이 등은 형사사건 재판을 위한 감정을 맡은 사람은 “변호사의 신랄한 질문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대응하는 것이 의무”라며, 인권을 충분히 지키기 위해선 “검사결과의 확보가 중요해진다. 그렇게 하면 재판심리에서 문제가 일어났을 때 제3자에 의한 재점검이 가능해지며 감정의 과학성이 확보되기 때문이다”라고 써놓았다.

이것이 재판에서 디엔에이 감정의 윤리라면, 일본 정부의 처리는 이것과는 한참 동떨어져 있다. 나라의 명예가 걸린 외교에도 재판과 다름없는 윤리가 필요하다.

그런데 <네이처>의 기사는 일본에선 보도되지 않고 있다. 일본 정부와 이 잡지의 논쟁은 스토 노부히코 민주당 의원의 국회 질의를 통해 계속되고 있다. 그것 또한 일본의 언론들은 전혀 전하지 않고 있다. 요시이는 침묵을 지키고, 올 봄 경찰기관에 들어갔다고 한다. 참으로 이상한 사태다.


송일호씨는 “납치는 불행한 사건이었다. 이는 도덕적인 문제라고 생각하며 해결을 위해 노력해왔다. 하지만 일본 쪽의 대응은 불성실했다”며 “납치도 식민지배도 20세기에 일어난 일이며, 25년 정도밖에 차가 없다. 그러나 일본에선 납치는 현재 진행중이고, 식민지배는 과거의 일이라고 분리해버리고 만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일본 정부는 상대방의 처지에 대해선 생각하지 않는다. 미안하다고는 하지만 반성은 않는다”고 지적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역지사지’라는 말이 들려오는 듯했다. 일본 정부만이 아니라 일본 국민의 문제다. 비판의 목소리가 중요한 이웃의 남쪽과 북쪽으로부터 들려오는 것이다.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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