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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4.26 18:56 수정 : 2005.04.26 18:56

아들의 학교 부적응과 신병 문제로 고민하던 아버지가 유서를 써놓고 가족과 함께 승용차에 불을 질러 동반 자살하자 친척들이 3명의 시신이 든 관을 교문 앞으로 옮겨놓고, 장기 농성에 들어갔다는 소식은 봄에 듣는 소식치고는 매우 안타까운 소식이었다.

그동안 학교폭력에서 자유로웠던 사람들도 이번 사건을 접하면서 그 심각성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했을 것이다. 같은 신분의 동료학생들로부터 고통받던 아들의 처지가 얼마나 치가 떨렸으면, 오죽 분했으면 유서를 써놓고 그것도 가족 모두를 데리고 죽음으로 항거했단 말인가.

사태의 심각성은 또 다른 데 있다. 학생의 신변안전을 일차적으로 책임져야 할 학교 쪽의 사태 불감증이 바로 그것이다. 이번 사건에서 죽은 자들은 말이 없지만 아버지가 적어 놓은 유서는 학교 쪽의 무성의, 무관심, 무대응, 무대책을 고발하고 있다.

농성장의 가족들은 이렇게 절규했다. “형님 집에서 교육부장관 등에게 보내는 탄원서가 발견됐다.” “형님 가족은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학교폭력에 시달려 고통을 겪는데도 학교 쪽에서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았기 때문에 죽음을 택한 것이다.”

죽음으로 가기 전 “아들이 동급생들에게 수없이 폭행당하고 폭언을 듣는 등 학교폭력에 시달려 학교 쪽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소용이 없었고 너무나 기가 막혀 두서없이 죽음을 안고 하소연합니다”라는 말을 남긴 유서는 지금도 어느 구석진 곳에서 학교폭력으로부터 고통당하고 있는 자식을 둔 학부형들의 하소연으로 들린다.

‘매년 수명의 학생들이 보이지 않는 따돌림으로 병들어도 말 못하는 현상이 되풀이됐다’, ‘철저히 조사해 학생들이 교내에서 병들고, 가정이 파탄되는 일을 막아달라’는 가족들의 탄원서를 교육 당국은 물론 학교 쪽은 교본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학교폭력으로 시달림 당하는 아들 일로 가족과 동반자살을 택한 가장의 선택 자체는 용서받지 못할 또다른 폭력이지만, 그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구체적이고 지속적인 학교폭력 근절대책이 세워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더이상 학교폭력으로 시달리는 학생, 교실에서 학생으로부터 매를 맞았다는 교사, 견디기 어렵다고 철 모르는 어린 것들을 자기 소유물로 착각하며 동반자살하는 어른, 교사의 회초리를 고발하는 학부모 등 어이없는 소식이 들리지 않기를 간절히 소망해 본다.

이재갑/서울 송파문화원 문예진흥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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